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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점자새빛 여름호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9-08-13 11:46 조회3,202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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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자 새빛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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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1년 11월 3일
  등록 번호 : 서초 바00097
  제60권 2호 통권360호
  발행일 : 2019년 07월 01일
  주소 :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97-1
  전화 : 02 – 533 – 9820
  발행겸 인쇄인 : 안요한
  인쇄처 :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01. 시 마당 : 새들이 울었던 자리가 있다 (주희)
  02. 생명의 말씀 : 가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기초단위 (안요한 목사)
  03. 인물 마당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에릭 리들)
  04. 짧은 글 긴 생각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05.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원
  06. 건강 코너 : 서민음식이 아니라 슈퍼푸드! 알고 보면 놀라운 보리쌀의 효능
  07. 말씀 테마 : 가면 쓴 채 은혜 받을 수 없어 (이찬수 목사)
  08.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09. 이럴 땐 이런 말씀 :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생각해볼 말씀 9
  10. 우울한 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김나단X김연선)
  11. 인생 멘토 (함택)
  12.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신다면… (마크&패티 버클러)
  13. 갓 포스팅 : 그분과 자주 만나라!

 


    01. 시 마당


  새들이 울었던 자리가 있다

  주희


새들은 먹고사는 일
다 노래로 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새들에게는 그 모든 것 하나라서
날갯짓의 고단함도, 저 그늘 속에 쉬어간다.


마음껏 울어도 받아줄 나무 있으니
사랑으로 건너는 일, 새에게 쉽다 하겠다.
나의 생에 또한 새처럼 자유롭다면 이 숲에 있는
모든 나무 사랑할 수 있으리라.
 

산길을 걷다가 산길 그 자체가 되고 싶었으나,
새가 되는 길을 물어 떠나려 했으나
먼 길 돌아와 앉은 이곳


내가 울고 있는 이 자리가,
새들이 울고
떠난 자리인가


어느새 와 있는
나뭇잎 하나
새들도 울었던 자리가 있음을 말해주는가.


성좌처럼 수놓은 그 울음
어디에나 있어
숲 곳곳 이토록 빛나는가.


내 온몸 가득 은하수 되고 나면
저 새들처럼 되려는지
눈물을 묻고 돌아오는 길


빛이 그늘진 산간에는
새들이 울었던 자리가 있다.

 


    02. 생명의 말씀


  가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기초단위

  안요한 목사


디모데전서 5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늙은이는 꾸짖지 말고 권하되”(1절),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효를 행하게 하라”(4절) 는 말씀이 나옵니다.
부모가 실수를 하거나 책임질 일을 했어도 따지지 말 것과 어머니는 자식에게 수유한 횟수를 기억하지 않으나 자식은 부모에게 조금 일을 했어도 계산하려 함을 일깨워 줍니다.
자기 부모에게 효행을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는 자녀들에게 효를 가르쳤는지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였는지 서로 서로 돌이켜 보기를 원합니다.
요즘 현대인은 집은 있으나 가정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공의 없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다 보니 자식들은 부모에게 받으려고만 하고 공경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깨닫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실 때 가나안의 혼인잔치에 가셔서 어려움을 도와주셨으며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에 자주 가셔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주셨고 불화하던 마르다와 마리아를 화목하게 해 주심으로 평안과 기쁨이 있는 가정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불효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은 절대 명령입니다.
부모 공경을 강조하신 것은 가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기초단위가 됩니다.
부모공경은 사람이 지켜야 할 덕행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이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가정을 소중히 인식하고 효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는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으며,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라도 어버이를 위해서 애를 쓰되 절대로 원망하지 말아야 하며, 무슨 일에는 부모를 먼저 생각할 것 가르쳤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효행을 가르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부모님께 효행을 해야 하겠습니다.

 


    03. 인물 마당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에릭 리들(스코틀랜드)
  오직 내 영광을 위하여 해롤드(유태인)


영국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지금까지 12시 종이 12번 치기 전에 400m를 돌고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해롤드가 해냈습니다.


에릭 리들은 타고난 육상선수입니다.
에릭 리들, 그는 천부적인 스프린터 였습니다.


유태인으로 자란 해롤드는 받은 핍박과 서러움이 삶 속에서 분노와 반발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꿈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살았습니다.
“내 앞에 방해되는 모두를 발로 밟아주고 말거야.”


그러나 에릭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삶의 목적을 주셨어! 중국 선교!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어!
 나는 달리고 싶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느껴져!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


100m 영국 대표팀 선발전에서 에릭과 해롤드,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선발전에서는 에릭이 우승했습니다.
에릭의 대승에 헤롤드는 심한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자기중심의 사람은 열등감, 좌절이 많습니다.


8회 파리 올림픽(1924년)
에릭은 100m 시합이 주일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위원장의 만류에도 출전을 포기합니다.
주일을 지키고자 출전을 포기한 에릭의 소식은 신문, 방송을 타고 급속히 퍼졌습니다.
에릭은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민들이 설득했고..
영국 왕자가 직접 찾아와 설득했지만
에릭은 당시 대영제국의 왕자 앞에서도 다니엘처럼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출전을 포기한 그 주일날
에릭은 하나님께 예배로 드렸습니다.

영국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죽을 썼습니다.
이렇다 할 기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에릭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선수들의 좌절, 패배를 본 에릭은 평일날 경기하는 400m 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됩니다.

400m 결승전 당일, 에릭에게 메시지가 하나 전달되었습니다.
메시지에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2:30)”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로다(시121:1)


“하나님께 내게 사명을 주셨어
 그리고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도 주셨어!
 나는 달린다!
 오직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드디어 에릭은 금메달을 땄습니다.

에릭 리들은 400m 금메달을 딴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선교를 하다가 중국에 뼈를 묻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사무엘상 2:30)


  * 출처 : CGNTV ‘1907 믿음의 사람들에서’ 발췌

 


    04. 짧은 글 긴 생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미소는
돈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이루어냅니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하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지 않습니다.

미소는
번개처럼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지속되기도 합니다.
미소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고
미소의 혜택을 즐기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소는 가정에서 행복을 꽃피우게 하고
직장에서 호의를 베풀게 하며, 친구 사이에는 우정의 징표가 됩니다.
지친 사람에게는 안식이고, 낙담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입니다.
세상 어려움을 풀어주는 자연의 묘약입니다.

하지만 미소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으며, 훔칠 수도 없습니다.
미소는 대가 없이 줄 때만 빛을 발하는 것이기에...


  * 출처 : 네이버 속 좋은 글 중에서 발췌

 


    05.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 원


남편이 잠 못 들고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돈이냐고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내일 몰래 혼자 고기 뷔페에 가서 소고기나 실컷 먹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요즘 아내의 얼굴이 야위었다면서요.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가에 물기가 촉촉했습니다.
“여보,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어젯밤 남편에게서 만 원을 받은 아내는 뷔페에 가지 못했습니다.
‘못 먹고 산 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요즘 노인정에 다니시는 시아버지께서 며칠째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 같습니다.
아내는 앞치마에서 그 만 원을 꺼내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드립니다.
“아버님, 제대로 용돈 한 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약주나 드세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끌어가는 며느리가 더욱더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돈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자랑만 했습니다.

“여보게들, 우리 며느리가 오늘 용돈 빵빵하게 줬다네.”
그리고 그 돈을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습니다.
다음해 설날,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습니다.
손녀가 기우뚱거리며 절을 합니다.
주먹만 했던 것이 이제는 훌쩍 자라 내년에 학교에 간답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절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놓은 만 원을 손녀에게 줍니다.
작년에 며느리에게 받았던 그 만 원입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지연이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세뱃돈을 받은 지연이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를 불러냅니다.
“엄마, 책가방 얼마야?”
엄마는 딸의 속을 알겠다는 듯 방긋 웃습니다.
“왜? 우리 지연이 학교 가고 싶니?”
지연이는 할아버지에게 받은 만 원을 엄마에게 내밉니다.
“엄마한테 맡길래, 내년에 나 예쁜 책가방 사줘.”

요즘 남편이 힘든 모양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 하던 잠꼬대까지 합니다.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 양복 주머니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 원을 넣어둡니다.
“여보, 내일 맛있는 것 사서 드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 출처 : 행복 한 바구니에서 발췌

 


    06.  건강 코너


  서민음식이 아니라 슈퍼푸드! 알고 보면 놀라운 보리쌀의 효능


과거 보리밥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비싼 쌀을 먹기가 어려워 농촌지역에서는 보리밥을 주로 해먹었죠.
하지만, 보리가 단순히 서민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효능을 가진 슈퍼푸드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분들이 찾고 있는데요.

보리는 과연 어떤 작물이고, 어떤 효능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보리를 먹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보리의 역사
보리가 식용으로 경작된 것은 기원전 7천 년경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원전 1,500년경부터 경작했다고 해요.
그만큼 보리는 오랫동안 인간의 배를 채워왔죠.

재밌는 것은 유럽에서도 우리처럼 보리가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져 보리빵이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었다고 합니다.

보리가 저렴한 이유는 생명력이 강하고 경작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에요.

추운 겨울 동안 자라는 보리는 다른 작물에 비해 병충해가 심하지 않아 농약을 거의 살포할 필요가 없고, 농사를 잘 못 지어도 흉작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쌀보다 보리쌀이 낫다?
보리쌀은 일반 쌀보다 높은 조단백질, 지방질 함유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당질의 경우는 77%로 쌀의 82%보다 낮지만 식이섬유는 밀의 5배, 쌀의 15배로 상당히 많고,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다른 어떤 식품보다 더 많이 함유돼있어요.

보리쌀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을 성분이 풍부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부족한 칼슘과 철은 쌀보다 각각 8배, 5배 정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또, 비타민 B1, B2 및 나이아신 또한 쌀의 1.5배에서 2배가량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쌀보다는 더 영양분이 많다고 할 수 있죠.

더 중요한 것은 쌀은 도정을 하면 영양분이 거의 다 소실되지만 보리쌀 도정을 해도 속겨층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영양분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보리쌀의 효능
1. 항암효과
   보리쌀에는 프로안토시아니딘이라는 물질이 들어있어 암 예방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면역력 향상
   보리쌀에 들어있는 폴리페놀화합물은 면역 증강 효과, 항알레르기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각종 알레르기 질환, 염증질환에 효능이 있습니다.
 
3. 변비 예방
   보리쌀의 풍부한 섬유소는 소화 흡수를 돕고, 대장의 기능을 향상시켜 변비를 해소합니다.

4. 당뇨 예방
   보리쌀은 당 생성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고, 혈당을 조절해 혈관 개선에 도움을 줘
   당뇨는 물론 당뇨합병증 예방에도 좋은 효능을 보입니다.

5. 다이어트
   보리쌀은 100g당 334kcal으로 쌀보다 열량이 낮고, 식이섬유가 많아 포만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며, 보리쌀의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하게 되면 음식 섭취량, 체중증가량이 줄고, 체지방도 감소합니다.

 

어떤 보리쌀을 선택해야 하나요?

보리쌀에도 종류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두 줄 보리와 6줄 보리로 분류하고, 껍질이 잘 분리되지 않는 겉보리와 잘 분리되는 쌀보리로 나눌 수 있죠.

우리가 흔히 먹는 것은 쌀보리인데 이중 찰성전분이 있는 찰보리와 일반 매성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밥을 짓기 편하고 식이섬유 함량도 높고 베타-글루칸 성분도 약 30% 정도가 많은 것이 바로 찰보리이기 때문에, 효능이나 맛을 위해서 찰보리로 밥을 지어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한의학과 보리쌀

한의학에서는 보리쌀을 ‘대맥’이라고 해서 기의 순환을 돕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설사를 그치게 하고 오장을 강하게 만들고, 이뇨작용을 도와 부종을 없애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동의보감>에서는 보리를 두고

“보리는 독이 없으며 주로 몸을 거뜬하게 하고
 소화 기능을 보해주며, 오래 먹으면 힘이 넘치고
 걸음걸이가 씩씩해진다.”

“보리는 위장을 편하게 해주며, 갈증을 없애고,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것을 치료해 주며 열조를 없게 하니...”

“보리는 오래 먹으면 머리칼이 희어지지 않고
 풍기를 일지 않게 하며...”

“맥류는 가을에 심어 겨울에 자라 봄에 빼어나고
 여름에 종실이 여무니 4계절의
 중화한 기운을 가짐으로 오곡 중 귀한 것이며...”
 라고 여러 차례 그 효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출처 : 대한한의사협회

 

 
    07. 말씀 테마


  가면 쓴 채 은혜 받을 수 없어…
 

아이가 어릴 때 혼내다보면 아이의 얼굴에는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엄마의 훈계 속에서 아이는 억울해 하기도 미안해 하기도 때로는 반항하고픈 표정도 다 드러납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는 자기의 표정을 컨트롤 해갑니다.
성숙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진실함으로 부모와 대하길 원합니다.
진짜 마음으로 나아올 때 그 관계의 진실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는 진실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중에 간혹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성도를 만나 상담할 때가 있다.

우리 교회 각 교구의 담당 교역자들이 워낙 성도들을 잘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담임목사인 나한테까지 상담 요청이 왔다는 것은 그 사안이 굉장히 심각하고 시급한 일인 경우가 많다.
사안이 무겁다 보니 때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성도를 만나 긴 시간 상담하고 나면 탈진할 것처럼 힘들 때가 있다.
때로는 이런 일상이 버겁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힘든 일이면서도 나에게 가장 활력을 주는 일이 상담이다.
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진지한 문제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 아닌가?
그리고 간단한 답을 드렸는데도 회복이 일어나고 특히 가정이 회복되는 일을 경험하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없다.

얼마 전에도 기쁜 일이 있었다.
어느 성도에게서 긴급한 상담 요청 메일이 왔는데, 아들이 지금 심각한 상황이니 급히 만나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인데,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심각했다.
급기야 ‘올해까지만 살고 연말에 자살해야지’라고 결심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힘든 상태에서 우연히 어느 무당을 알게 되었는데, 그 무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살풀이굿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아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하기로 하고 거액의 계약금까지 선불로 주고 왔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겠는가?
그러자 아들은 “계속 이렇게 굿을 반대하면 연말에 죽으려던 것 그냥 지금 죽겠다”라고 했단다.
그러니 그 어머니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급한 일인가?
내 입장에서도 이런 상담 요청이 들어오면 초긴장 상태이다.
그래서 그날 오후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그 아들을 급히 만났다.
만나보니 얼굴이 참 선량해 보였다.

그 형제를 붙잡고 왜 굿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면서 설득했다.
“대부분의 무당은 다 가짜이고 간혹 진짜가 있는데, 그 무당이 가짜라도 문제가 있고 진짜여도 문제다.
가짜 무당이면 큰돈을 날리는 것이니 억울한 일이고, 진짜라면 악신을 이용하여 너를 옭아매려는 것이니 더 큰 문제다. 그러니 굿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정말 신신당부를 했다.
보통 자기가 마음에 굳게 결심한 일을 옆에서 반대하면 귀찮아서라도 대충 “네, 네” 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넘어갈 텐데, 심성이 반듯하고 정직했던 그 형제는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한 시간 반을 설득한 끝에 굿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한 이후에는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다.
무당에게 주었던 돈을 환불받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 진료도 받고, 처방 받은 약도 잘 먹고 있다고 한다.

그 형제가 귀한 것이, 그는 가면을 쓰고 나를 대하지 않았다. 그런 형제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 이런 확신이 오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가면 쓰지 않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는 이런 모습을 귀하게 보신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반드시 고쳐주신다.’

이 형제 외에도 가끔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중에 마음의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한강까지 찾아간 학생이 있다.
죽으러 한강으로 갔는데 강 아래 있던 경비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이후에 나와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상담한 적이 있는데, 그 학생 역시 너무나 진지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 학생은 지금 회복되어 학교생활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가끔씩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 오는데,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왜 치유가 잘 되는지 아는가? 가면을 쓰고 다가오지 않아서 그렇다.

자기는 어떻게든 굿을 할 것이지만 목사가 자꾸 귀찮게 하니까 가면을 쓴 채 대충 “네, 안 할게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해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절대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 형제를 귀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벗어야 한다.
우리 안에 오래도록 방치된 위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죄들, 하나님 앞에서 거리끼는 그 무엇을 가면으로 가린 채 그대로 둔다면 은혜란 없다. 가면을 벗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_요한복음 8:36

이 간단한 진리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무엇에 묶여 있는가? 그 묶인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자유를 누리고 싶은가?
가면을 벗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로마서 2장에서 지적 받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시인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책망이 사실은 나를 향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맞다! 나는 실천 없는 삶을 살았어.
 입으로 떠들기만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어.
 방치된 위선이 내 안에 있다.
 너무 오래 가면을 쓰고 교회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구나!
 주님, 저를 용서하소서! 가면을 벗기 원합니다.’
이러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고는 회복은 없다. 영적인 은혜는 없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본문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실천 없는 삶’과 ‘방치된 위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원하신다.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아픈 마음으로 되물어야 한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목사라고 하는 네가! 집사라고 하는 네가! 성도라고 하는 네가!” 우리의 가면을 벗기고 직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그 주님 앞에 나아가 놀라운 은혜를 누리기를 바란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로마서 2:25-29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한다>이찬수 p110


  * 출처 : 이찬수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출판 규장

 


    08.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보름달

친정집에서 키우는 장군이는 열다섯 살 된 노견이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동자는 백내장으로 하얘졌고, 윤기 나던 털은 푸석해져 초라해 보였다.
어느 날 일곱 살짜리 둘째가 장군이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소리쳤다.
“엄마, 장군이 눈에 보름달이 있어!”
그 뒤로 측은하기만 했던 장군이가 다르게 보인다.


  이모 거야!

첫 조카가 태어난 지 이 년.
이제 말을 제법 알아듣는다.
간식으로 쌀 튀밥을 주었다.
튀밥이 작아 조카가 잘 집지 못한 탓에 먹는 것 반, 흘리는 것 반이었다.
바닥에서 튀밥을 주워
“떨어진 건 이모 거야. 진우는 새 거 먹어.”
하며 입에 넣었다.
그러자 조카가 튀밥 하나를 집어 바닥에 콕 찍더니 내게 건네는 게 아닌가.
“진우야, 그냥 줘도 돼.”


  여보지요?

첫째 딸은 여덟 살이 되면서 전화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잘 놀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번호를 물어 적어 두었다가 심심할 때 전화를 걸곤 한다.
하루는 딸이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전화할 때 ‘여보세요?’ 하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뚱딴지같은 말에 이유를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여보니까, ‘여보지요?’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달 세수

세 살 아들과 손잡고 마을 어귀로 남편을 마중 나갔다.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아들이 말했다.
“세수하지 않고 놀러 나와서 집에 간 거야.”
달은 이내 다시 나타났다가 구름에 가려졌다.
“어, 다시 들어갔네?”
“깜빡하고 손발을 안 씻었거든.”
“달은 손발이 없는데?”
“응, 달은 손발이 얼굴하고 꼭 붙어 있어.”


  * 출처 : 월간 도서 <좋은 생각> 이오아이 발췌

 


    09. 이럴 땐 이런 말씀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생각해볼 말씀 9

곁에 있는 사람이 미워지는 건 참 순식간인 것 같아요.
미워하기 시작하면 별일 아닌 작은 일도 마음을 어렵게 합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미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만 통 나아지질 않네요.

아무래도 진리인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기로 결단해야 할 것 같아요.

죄인인 나를 위해 주님은 생명을 받쳐 주셨는데 왜 이렇게 나는 연약할까요?
사랑의 전부이신 주님께 그 힘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1.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마 6:14)

2.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 2:10)

3.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눅 6:35)

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5.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6.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7.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

8.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9.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주님, 미운 그 사람을 사랑할 힘을 주세요.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을 말씀으로 다스리길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 갓피플 포스팅

 


    10. 우울한 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우울한 감정에 눌려
무기력하게 보냈어요.

걱정거리와 두려운 일이 많고,
생각하다 보면 멈춰지지가 않아서
더 깊이 우울감에 휩싸여요.

제게는
주변 사람들과 말을 섞거나
출퇴근하는 것도
버겁고 힘든 일상입니다.

하지만 더 무섭고 두려운 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에요.

우울한 이 감정에 잠기면
하나님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고
삶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저를 지배해요.

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 13:5 -


내 사랑아,
지금 네 모습은 어린아이가 어두운 밤길을
두려움에 떨며 걷는 것과 같구나.

내가 곁에서 너를 꼭 붙들고 있는데
무엇이 너를 힘들게 하니?

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걱정과 근심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감정이야.

그 감정이 지금 당장은 네 마음을 쥐어짜며
네 인생의 가장 괴로운 순간으로 위장하여
너를 괴롭히지만 나 외에 영원한 건 없단다.

네 영혼의 피난처인 내가 있음에도
네 마음이 힘을 잃어 똑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네가 나를 떠나있기 때문이야.

우울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내게로 나아오렴.
언제나 너를 위해 두 팔 벌리고 있는 내게로 말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입술조차 뗄 수 없을 때는
그저 내 이름만 부르렴.

나를 부르며
네 마음속에 들려주는
내 음성에 귀 기울여보렴.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내가
네 마음속에 빛을 비춰줄게.
네 마음속 먹구름을 걷어줄게.

사랑으로 너를 기다리는
내게로 지체하지 말고 나아오렴.


  * 출처 : 김나단X김연선 <하나님의 때> 도서출판 규장

 


     11. 인생 멘토


  인생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다.


자기 정체성은 쉽게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세상의 소금”(마 5:13)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마 5:14)이자 “빛의 자녀들”(엡 5:8)입니다.
우리는 ‘선택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참으로 놀라운 이름들입니다.
과연 부족한 우리에게 어울리기나 하는 이름인지 낯이 뜨거울 정도입니다.
고대에서는 신이나 왕에게만 붙여주는 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이름이요, 별명입니다.
얼마나 황홀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존귀한 존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스스로 무가치한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생명을 치르고 산 존귀한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출세와 돈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팔아넘기면 안 됩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가 아무리 탐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소금도 빛도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거룩한 영광의 이름들을 주셨을까요?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렇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역할은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서 해야 할 일 또한 예수님의 생명을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널리 자랑하는 것입니다.

키르기스스탄의 대서사시 <마나스>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매우 용맹하고 활을 잘 쏘는 명사수 졸라만이 나옵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 악명 높은 츄안츄안 부족이 쳐들어오면서 그는 포로가 되고, 극심한 고통 속에 송두리째 기억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졸라만은 더 이상 졸라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은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청년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가슴에 화살을 날렸습니다.
자신의 존재 근원인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이 섬뜩한 이야기에 담긴 교훈은 무엇입니까?
자기 정체성의 상실은 곧 자기 존재의 부정(不定)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졸라만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인생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파격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존재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만 살펴본다고 해서 우주의 진리를 알 수는 없습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두 가지 지식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지식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또 그분에 대해 알게 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알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가야 한다.
 매일 성경 말씀과 기도로 주님 만나기“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든다고 합시다.
어떤 그릇이 나올지는 진흙을 아무리 연구한들 알 수 없습니다.
그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생각을 알아야 어떤 그릇이 나올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온전하게 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 목적에 맞게 산다는 뜻입니다.

바른 자기 정체성은 건강한 인격을 만들고 인생을 소중한 작품으로 빚어가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세상에 밝히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매 순간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말 한마디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거룩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 출처 : 함택 <인생 멘토> 도서출판 규장

 


    12.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신다면…


  어떤 원수도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실 때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아무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으실 때는 모든 것이 힘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내면에 말씀하지 않으실 때 다른 모든 위로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 말씀만이라도 하시면 우리는 큰 위로를 느낍니다.
마르다가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요 11:28)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울고 있던 자리에서 즉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그대를 눈물의 자리에서 불러내어 영적 기쁨의 자리로 옮겨주실 때야말로 행복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그대의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힘겹겠습니까!
예수님 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헛되겠습니까!
온 세상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 아닙니까(마 16:26)?

예수님이 없으면 세상이 그대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예수님 없이 사는 것이 끔찍한 지옥이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달콤한 낙원입니다.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신다면 그 어떤 원수도 그대를 해칠 수 없을 것입니다(롬 8:35)

예수님을 찾은 사람은 좋은 보화를 찾은 것이며(마 13:44), 모든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잃은 사람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으며, 온 세상을 잃은 것보다 많이 잃은 것입니다!


“나의 상급, 나의 피난처, 나의 위로자,
 주인님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


예수님 없이 사는 사람이 가장 가난하고(눅 12:21), 예수님과 함께 잘 사는 사람이 가장 부유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법을 아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며 예수님을 곁에 모시는 법을 아는 것은 대단한 지혜입니다.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하실 것입니다(잠 3:17). 경건하며 평온을 유지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그대의 곁에 머무실 것입니다.

외적인 것에 눈을 돌리면 곧 예수님을 쫓아내고 그분의 은혜를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쫓아내고 그분을 잃으면 어디로 피하고 누구를 친구로 삼겠습니까?
친구가 없으면 잘 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친구로 두지 못하면 참으로 슬프고 쓸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누군가를 신뢰하거나 기뻐한다면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갈 6:14).

예수님이 그대에게 화내시게 하느니 차라리 온 세상을 적으로 삼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 중에서 오직 예수님을 특별히 사랑하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모두를 사랑하되, 예수님은 그분 자체로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만이 특별히 사랑해야 할 분입니다. 그분만이 모든 친구보다 선하고 신실하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친구뿐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십시오.
이들 모두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기도하십시오(마 5:44 ; 눅 6:27,28).

특별히 칭찬받거나 사랑받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이런 것은 그 누구와도 비길 데 없는 분이신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대에게 마음 쏟기를 바라지 말고, 그대의 마음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쏟지도 마십시오.
예수님이 당신 안에, 그리고 모든 선한 사람 안에 계시게 하십시오.

그대의 내면을 순수하고 자유롭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이 그 어떤 피조물에도 얽매이지 않게 하십시오.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 자유롭게 숙고(熟考)하고 또 알고 싶다면, 그분 앞에 벌거벗고 자신을 열어놓은 채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향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에 이끌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오직 그분과 하나 되는 데서 오는 행복을 결코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그 사람은 궁핍하고 약해지며, 채찍질 당하도록 넘겨진 사람처럼 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끈질기게 의지하고,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견디십시오.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밤이 지나면 낮이 다시 오며, 폭풍이 지나면 더없는 고요함이 오기 때문입니다.


  * 출처 : 토마스 아 켐피스 <내면을 향한 유익한 권면> 도서출판 규장

 


     13. 갓 포스팅


  그분과 자주 만나라!


  크리스천은 그분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기도해야 하는 최대의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기도하라는 그분의 명령을 받았다(마 6:9; 눅 21:36).
주께서는 우리가 쉽게 따를 수 있게 모범을 보여주셨다.
주님은 부르짖어 기도하셨다(히 5:7).
새벽에도 밤에도 기도하셨다(막 1:35, 14:17-42).
습관에 따라 기도하셨다(눅 22:39).
바쁠수록 더 기도하셨고(눅 5:15,16), 제자들을 위해서는 금식과 철야로 기도하셨으며(마 4:1-22; 막 14:32-42),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환경을 억지로 바꾸어서라도 기도하셨다(막 6:45,46).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다.
크리스천은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분의 명령과 모범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영혼의 호흡에 비유하곤 한다.
“항상 기도하라”는 성경의 명령 때문이다(롬 12:12; 살전 5:17; 엡 6:18).
성경을 따르면 기도는 이벤트가 아니다.
항상 하는 일이다.
호흡은 생명의 특징이다.
살아있는 한 계속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기도도 같다.
기도를 지속하지 않는 크리스천의 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크리스천은 예수님 안에서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산다.
새 생명을 얻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된 인생은 기도라는 새 호흡이 항상 필요하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분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를 지속해야 한다.
시체는 숨 쉴 필요가 없고, 불신자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신자라면 기도 호흡이 항상 필요하다.


우리는 꼭 기도해야 하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기도는 늘 어렵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E. M.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 목사는 “기도는 거룩한 일이라서 죄인인 나는 늘 기도하기를 싫어한다”라고 했다.
인간에게는 죄의 경향성이 있다.
죄인에게는 죄짓는 일이 자연스럽고, 거룩한 일은 어색하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엘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진정한 기도는 사랑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과의 만남을 싫어한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라서 가까이 갈 때마다 어렵다.

죄인이 거룩한 분과 만나면 회개로 일관해야 한다.
그분 앞에서 조금이라도 잘난 척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그분이 사랑하시는 걸 미워할 수 없고, 싫어하시는 걸 아낄 수 없다.
기도하면 얻는 것보다는 회개로 버릴 게 더 많아진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고전 15:31).
크리스천도 기도의 자리에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한다.
하나님과 자주 만나면 자주 죽어야 한다. 죄에 죽고 또 죽어야 한다.
죽음이 쉬울 리 있겠는가!

세 번째는 기도의 환상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기도를 어렵고 특별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쉽고 일상적이다. 모세를 보라.
그는 하나님의 출애굽 비전에 순응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리더십이 잘 먹히지 않는다며 힘들어 죽겠다고 떼쓰는 기도를 했다(민 11:15).

한나도 구속사의 실현을 위한 거국적인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개인의 원통함과 분노를 해결하려는 작고 이기적인 기도를 했다(삼상 1:16).
다윗은 원수를 사랑하게 해달라는 거룩한 기도 대신에 보복해달라고 서슴없이 기도했다(시 35:1,26).


“다윗은 속상함을 토로했지만,
 미움 역시 회개했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일상에서 솔직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자는 위대하거나 거룩하지 않다.
다만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위대하고 거룩하시다.
이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보다 쉽고 평범하게 기도를 다룰 수 있다.

영성 작가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단순한 기도’라는 말로 기도의 평범함을 주장했다.

단순한 기도에는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흉한 것 모두가 섞여 있다.
단순한 기도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상적인 문제를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아뢰는 것이다.
그 기도에는 가식이 조금도 없다.
실제 우리의 모습보다 더 거룩하고, 더 순결하고, 더 성스러운 체하지 않는다.
- 리처드 포스터, <기도>, 25쪽

맞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싫어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는 기도의 장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도를 해야 할 이유이다.
기도는 죄인에게 필요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만든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님과 사랑으로 일치된 존재라면 역시 기도할 필요가 없다.
죄인이라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기도가 주어졌다.
기도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사랑의 선물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자리는 기적과 같다.
그분과의 대화조차 불가능한 죄인에게 기도의 길이 열렸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부모·자식 관계가 되어 담대히 기도한다.

그 기도는 대단할 필요가 없다.
죄인의 기도는 더럽다.
리처드 포스터의 지적처럼 우리는 일상의 문제로 기도한다.
다만 사랑하는 아버지께 드리기에 용납되며 열납된다.
거짓 없는 진솔한 대화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가능해졌다.

물론 일상의 기도가 기도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기도 루틴을 짤 때는 훌륭한 시작 방법이다. 쉬운 시작이 곧 옳은 방법이다.


  * 출처 : 송준기 <크리스천 생존 수업> 도서출판 규장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2019년 점자새빛(가을호)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중앙로 97 - 1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06570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 02-533-9863,4
 지참 서류 : 장애인등록증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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