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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호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8-11-08 14:59 조회3,222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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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자 새빛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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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1년 11월 3일
  등록 번호 : 서초 바00097
  제57권 3호 통권353호
  발행일 : 2017년 10월 01일
  주소 :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97-1
  전화 : 02 – 533 – 9820
  발행겸 인쇄인 : 안요한
  인쇄처 :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01. 시 마당 :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02. 생명의 말씀 : 우리는 감사합니다 (안요한)
  03. 인물 마당 : 지금,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까? (로라 윌킨슨laura wilkinson)
  04. 짧은 글 긴 생각 : 하루의 행복
  05.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06. 건강 코너 : 통증,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
  07. 말씀 테마 :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김남국)
  08. 묵상 : 나 하나면 충분하다면서? (유기성)
  09.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10. 이럴 땐 이런 말씀 : 내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임을 알려주는 말씀 10
  11. 주님, 제가 이 고난 중에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체리 힐)
  12. 그럴 때 있으시죠? : “나 같아도 그런 마음이 들겠다.” (김제동)
  13. 한비야의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들 : 근데, 그게 내 잘못이야? (한비야)

 

    01. 시 마당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02. 생명의 말씀

 우리는 감사합니다

  안요한


 어느 날 세계 각처의 새들이 모여 총회를 열었습니다.
총회주제는 ‘어떻게 감사할까?’였는데 ‘우리는 감사합니다’로 결의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땅에서는 사자, 호랑이가 힘이 세다고 왕노릇하지만 날개가 없고 바다에서는 고래, 식인상어가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또한 날개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 새들에게만 날개를 달아주셔서 산과 강, 들과 골짜기 등 그 어디든지 날아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이었답니다.
이어서 새들은 말로만 감사하다고 하지 말고 각자 감사 찬송을 부르는 것이 어떠냐? 고 제의하자 모두 찬성하였습니다.
‘그럼, 누가 제일 먼저 부를까요?’ 하루살이가 내가 제일 먼저 부르겠습니다 하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감사 찬송을 부르니 학이 얼굴이 벌게지면서 도전을 받았습니다.
‘아니, 하루밖에 못 사는 하루살이가 감사하다고 하는데 나는 삼천년도 살 수 있는데…’ 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하였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호흡의 양면이 있어야 건강합니다.
숨을 내 쉬고 들이 쉬어야 건강하듯이 숨을 내 쉬기만 하던가 들이 쉬기만 하면 죽습니다.
나는 출세도 했고 돈도 잘 벌고 여러 일로 바쁘니까 숨을 내 쉬기만 해야지 하고 내 쉬기 한쪽만 합니까?

  육신의 건강도 양면의 호흡이 있듯이 영혼의 건강도 양면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합니다’하다가 조금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나님은 무엇 하고 계시지?’ 하고 의심하고 원망 불평하면 안 되지요.
기쁜 일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고, 비록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이런 시련을 통해서 연단하시어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양면에 감사하면 영혼이 건강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삶에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닌 고난에 빠진 나를 보시며, 귀를 고난 중에서 울부짖는 간구에 기울이심을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 중 비록 많은 불평을 했지만 그들에게 만나를 주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자꾸 감사의 조건을 주시면서 연단하시어 가나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어렵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 안에 숨겨진 축복의 비밀을 캐내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감사하는 복된 점자새빛가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3. 인물 마당

  지금,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까?

  로라 윌킨슨(laura wilkinson)
 

16년 동안 중국의 강세가 이어진 여자 다이빙 종목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다이빙 여자 10M 플랫폼
예상대로 중국 선수들이 1,2위를 다투게 된 결승전
모든 카메라가 중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담기 위해 분주한 그때
한 쪽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미국 국가대표 로라 윌킨슨(laura wilkinson)

예선부터 준결승을 거쳐 결승전까지 ‘5위’에 머물고 있는 로라 윌킨슨
올림픽 출전 3개월 전, 오른쪽 발 뼈 부상으로 7주간 병원에 누워만 있었던 그녀에게 결승전 진출은 대단한 성과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로라.

총 5차전까지 치르는 10M 플랫폼 결승전에서 로라 윌킨슨은 2차전 모두 5위에 그쳤고 선두와 60점 이상 차이가 난 상황
결승전 3차전
최고 점수를 얻어 순식간에 선두와 격차를 줄인 대반전이 일어났다.

다이빙대에 서서 도약 직전까지 계속 무언가를 중어거리는 로라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은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4차전
다시 최고점을 얻은 그녀로 인해  모든 취재진과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잇따른 중국 선수들의 실수로 4차전에서 1위로 올라선 로라 윌킨슨

마지막 5차전!
자신의 최고 난이도 기술을 선보일 차례, 이 순간 그녀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이다.

7주간 병원에 있을 때 올림픽을 포기하려던 그녀에게 주님은 이 말씀을 주시며 그녀를 응원하셨다. 로라는 이 말씀을 붙잡고 언제나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대역전의 비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 후 아테네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 행진을 이어간 로라 윌킨슨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36년 만에 미국은 다이빙 여자 10M 플랫폼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당신의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04. 짧은 글 긴 생각

 하루의 행복


이른 새벽
눈을 뜨면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나에게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태양의 따스한 손길을 감사하고,
바람의 싱그러운 속삭임을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풀어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음을 또한 감사하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빗방울 하나에서도 눈물겨운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확신을 갖는 일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면서 가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고 행복이라고 합니다.


  * 출처 : 하루의 행복 중

 

    05.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별일이로군.“

나는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거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말이야.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어.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무슨 뜻이에요?"

"안방 장롱처럼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게 아내고 남편인데, 뭐가 애틋할 게 있겠어?
 그저 내 남편이구나 하며 사는 거지."

"뭐예요? 그럼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타성으로 산단 말예요?"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아차'했어.
아내의 기분을 거슬러 봐야 내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일찍이 터득한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늘 섭씨 구십구 도로 끓고 있다구."
 
아내는 눈을 흘겼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었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다시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로 시선을 돌렸어.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했거든.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
그러고 보니까 오늘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찍어내며 어깨를 들먹거렸어.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어.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어.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었어.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그렇게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어.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우리 만두집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어.
그게 사람인가 봐.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 거.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세 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거야.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어.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거야.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어.
울먹이는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아들 집에 사셨대.
두 분이 싸우셨냐구?
그게 아니라 아들 며느리가 싸운 거지.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한 분씩 모신 거야.
그래서 두 분은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구.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어.
이 땅에 아들이고 며느리인 나와 아내는 죄인처럼 할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어.

 

    06.  건강 코너

  통증,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몸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는 증상이 있을 때가 있다. 단순히 ‘감기 몸살이 오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다가는 자칫 큰 병으로 키울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을 공격하는 무서운 질병, 만성통증에 대해 알아보았다.


”통증은 우리의 곁에 있고 언제나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통증과 더불어 현명히 살아가는 방법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본인의 통증 점수를 의료진과 상의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첫 번째다.”

 

■ 만성통증의 심각성

우리가 통증을 간과했을 때 통증은 우리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통증 인구는 대한민국 성인 250만 명을 괴롭히고 있다. 이들 통증 환자의 35%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만성통증으로 인해 수반되는 증상도 다양하다. 불면증, 우울증, 호흡곤란,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통증을 방치할 경우 돌이키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만성통증에 시달릴 수 있다. 이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진통제 방식은 마약성 진통제다. 그러다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치아 유실과 우울증, 성기능 장애 등 생각만 해도 끔직한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일단 통증이 있으면 참지 말고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심신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길고 어두운 통증의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 디스크 통증

인구의 80% 이상은 살면서 한번쯤은 허리통증을 경험한다. 원인은 허리디스크나 척추협착증 외에도 척추압박골절, 척추분리증, 척추방전위증, 척추측만증 등 다양하고 복잡하다.

디스크는 척추 안의 디스크가 탈출하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통증과 팔다리가 저리는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이럴 때 대부분 약물이나 주사요법 시술과 같은 각종 보존적 치료를 받게 되며, 그래도 통증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결국 수술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수치료나 감압치료 등을 통해 수술 없이 치료하는 방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신경 성형술과 같은 간단한 시술법도 나와 치료의 폭이 넓어졌다.


■ 대상포진 후 신경통증

대상포진은 세계 인구의 30%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이러한 대상포진은 여름철이 되면 30%가 증가하며 50대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병한다.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앓았던 수두바이러스가 신경 속에 숨어 있다가 면연력이 떨어진 틈을 타 신경을 다시 공격해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한 통증과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통증을 방치하거나 늦게 치료할 경우 만성신경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수포가 발생하고 난 후 72시간 내로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암 통증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이 말을 각종 질병으로부터 사망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의학 기술의 발전과 조기 검진의 활성화로 암 환자의 조기 치료 및 완치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암 환자의 사망률이 낮아진 것이 치료 과정을 통증을 줄여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암 환자들이 극심한 통증은 당사자들이 말 못할 고통이자 사랑하는 가족들 역시 차마 보기 힘든 과정이다. 이러한 암 환자에게 통증이 발생할 확률은 52~80%로 진행 중인 암 환자의 10명 중 7명 이상은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 수술 후 통증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허리디스크 등 외과적인 수술을 받았지만 이상하게 수술 후에도 통증이 지속될 경우에는 수술 후 통증증후군을 의심한 필요가 있다.

수술을 통증이 유발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인데 이러한 수술을 통해 통증의 원인을 모두 제거한 이후에도 원인 모를 통증이 지속된다면 수술 후 통증 증후군인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이 경우에는 꾸준한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통해 통증을 잡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에는 통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출처 : 여성중앙 건강칼럼


 
    07. 말씀 테마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김남국


신앙생활은 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는데 편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세상 사람처럼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불교 집안 출신으로 세상으로부터 온 사람이고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회 다니면서 논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가소롭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대로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날라리는 세상에 있다. 정말 멋지게 논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논다는 사람은 놀면서도 켕겨 한다.
주일에 빠지고 놀아도 마음이 불편하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세상에서 좀 놀았다는 사람도 지금 놀라고 하면 제대로 못 논다.
놀아도 찜찜하다. 갈 데까지 못 간다.

편한 것을 좇지 말라.
그러면 뭔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신앙생활도 못한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찌질이 인생, 찌질이 신앙이 좋은가?
우리가 세상으로 가지 못할 것 같으면 방법은 하나다.

이제 우리는 말씀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려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화끈하게 놀지 못할 바에야 영적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는 것이다.
편한 것이 아니다. 죄악의 낙은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가 편한 것을 좇으면 사탄이 얼마나 공격하기 쉬운지 모른다.

예화를 하나 소개하면, 물병이 두 개 있다.
사탄이 어떤 사람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한 쪽 물병에는 독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독이 없다. 복불복(福不福), 먹었는데 살면 100억을 주고, 죽으면 어쩔 수 없지! 해볼래?”

그가 속으로 ‘인생도 구질구질한데, 그래 먹자’ 하고 먹었는데 물을 먹었다.
그날로 통장에 100억이 입금되었다. 신나고 편하게 살았다. 그런데 돈이 떨어졌다.

그때 그 앞에 다시 사탄이 나타났다.
“한 번 더 할래?” 또 한 번 했는데 이번에도 물을 먹었다.
그의 통장에 또다시 100억이 들어왔다.
이 사람이 얼마나 운이 좋았느냐 하면 70세가 되도록 이렇게 돈이 들어와서 떵떵거리고 편하게 살았다.

그의 앞에 사탄이 나타났다.
“자, 마지막으로 한번 할래?” 막말로 이번에도 물을 먹으면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 수 있다. ‘지금껏 평생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거지처럼 살 수 없지. 한 번 더 하자.’

그런데 이번에도 또 물을 먹었다.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와, 나는 행운아다!”

그러자 사탄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진짜 행운아다!” 그러더니 반대편에 있던 물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도 멀쩡했다.

“어? 독 없어?”
“지금까지 독이 든 물병은 하나도 없었어.
나는 네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세상으로 가서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탄은 지금도 “너희끼리 신앙생활 해라. 너희끼리만 예배하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세상에서 편히 살기 원한다면 사탄은 우리에게 원하는 돈을 주고 원하는 건강을 줄 수 있다.
그러면 돈과 건강이 있으니까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편한 것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 쉬운가?
그렇지 않다. 어렵다. 그런데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통로로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그 인생을 인정해주시기 때문이다.

편한 것을 좇지 말라. 편한 것을 좇으면 사탄은 분명히 우리에게 편한 것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편한 것을 좇지 않고 말씀과 주님을 좇아야 한다.


  * 출처 : 김남국 <넌 내가 책임진다> 도서출판 규장

 

    08. 묵상

  “나 하나면 충분하다면서?”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까?>

  유기성


아내가 <문화행동 아트리>의 대표 김관영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멘!” 하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정말 선명한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가지가 부족해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 10:21

너무나 부끄럽지만 주님은 제게도 그것을 이미 깨우쳐주셨습니다.
신학교 졸업반 때, 찬송가 355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가사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성공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의 소원은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려면 학력도 경력도 영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할 교회도 가려서 갔습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은 목회 실패의 변명 같았습니다.
“나 하나면 충분하다면서?”라고 말씀하시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주의 종이라면서도 종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접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왕이십니다!” 하고 고백하는 데 두려움이 함께 있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대접받는 것은 좋지만 주님이 나를 내가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도 못했고 하나님나라의 영광도 알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당시 제게 은밀한 시간은 죄짓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난 다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하고 고백하게 되었고 은밀한 시간은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주님은 10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하나를 요구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전부가 아니고 하나였는데도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목사요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제 전부를 다 드려야 하는데 그것 하나 못 드리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주님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자꾸 드리는데도 더 주십니다.

12년 전 아내가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완치되었지만, 그때 우리의 삶이 이렇게 쉽게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와 제 아내에게 너무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오직 한 길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개인적으로 또 가정이나 교회의 일로 이런저런 잔걱정이 많았고,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갈등도 많았고, 마음의 짐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짐과 근심이 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주님과 하나가 되어

오직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 안에만 거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맡겨주신 교인들을 사랑하다가 주님 품에 안기는 것만이 보였습니다.
그 길이 그렇게 분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에게 그의 성공 비결을 물었을 때, 부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물 어린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두뇌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린 자를 통하여 주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그것만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고 축복의 길이고 영광의 길임을 깨우쳐주십니다.
하나님께 전부를 드린 순간부터 우리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모든 걱정과 갈등, 마음의 짐과 두려움이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 출처 : 유기성 <예수와 하나가 되라> 도서출판 규장

 


    09.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뱉어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늘어난 흰머리에 한숨 쉬었다.
그러다 둘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요?”
“흰머리 때문에 슬프네.”
“왜 흰머리가 생겼어요?”
“나이를 많이 먹어서.”
“뱉어요! 나이를 뱉으면 흰머리가 없어질 거예요.”
귀여운 둘째 덕에 웃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필요 없어요.

지윤이와 지호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몰래 쫓아갔다.
사탕을 고른 뒤 잔돈까지 거슬러 받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던 그때, 지호가 점원에게 사탕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간 뒤 점원에게 물었다.
“애들이 사탕 다시 주고 가던데...”
“2+1이라 하나 더 줬는데 필요 없다고 두고 갔어요.”
아이들의 순수함에 웃음이 나왔다.


  이건 엄마 거

둘째와 마트에 갔다.
주류 코너를 지나는데 둘째가 소주를 보고 말했다.
“이거 아빠 거야!”
아내가 눈을 흘기며 술 좀 줄이라고 핀잔했다.
모퉁이를 돌자 이번엔 맥주가 나왔다.
“이건 엄마 거야.”
주변 사람들이 킥킥거리자 아내 얼굴이 빨개지더니 얼른 집에 가잔다.
“현준아, 엄마 비밀 좀 지켜 주지 그랬니,”


   다치면 안 돼요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다 칼에 손을 벴다.
“아야!”
큰 소리를 내자 딸이 주방으로 뛰어오며 말했다.
“엄마는 다치면 안 돼요,”
“왜?”
“엄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중한 보물이니까요, 엄마가 아프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속상해해요. 오늘 다친 건 비밀로 해 줄게요.”


   포도가 들을까 봐

아이들이 간식으로 산딸기와 포도를 먹고 있었다.
작은 아들이 큰아들에게 물었다.
“형아는 산딸기가 좋아? 포도가 좋아?”
“나는 포도가 더 좋아.”
그러자 작은 아들이 속삭였다.
“나는 산딸기가 더 좋아.”
지켜보던 내가 물었다.
“왜 작게 말해?”
“포도가 들으면 기분 나쁠까 봐.”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생일 축하합니다.

친정 할머니 제삿날,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늦은 저녁 제사상을 차리고 초에 불을 붙이는데 다섯 살 조카가
“생일 축하합니다~”하고 박수 치면서 노래 부는 게 아닌가.
그러자 세 살 조카는 초를 불 준비까지 했다.
가족들은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 출처 : 월간 도서 <좋은 생각> 이오아이 발췌

 

    10. 이럴 땐 이런 말씀

  내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임을 알려주는 말씀 10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일이 버거운가요? 혹시 살아 있는 게 감격스럽지도,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눈을 들어 크고 위대하시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운 성품을 경험적으로 알아 나가는 것도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 몫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는 참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외쳐보세요. 주님이 직접 은혜의 문을 열고, 살아갈 수 있는 지식과 힘을 공급해 주실 겁니다.

 

1.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치를 창조하시니라 – 창 1:1”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구속하시고 또 지금도 이끌고 계시는 그분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참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2. 주는 나의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리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 시편 118:28”

위대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건은 인간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그분과 어떻게 동행하며 살아가느냐 입니다.


3.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엡 2:10”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으리라 – 롬 3:24”

십자가로 얻은 이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5.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으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엡4:16”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운명을 같이하는 구원입니다.


6. 교회의 지체로 자라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엡 4: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접붙여 생명과 사랑을 줌으로써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7. 구원의 덕을 선포하는 삶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그리스도인은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자신의 존재와 삶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사명입니다.


8. 선하신 하나님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다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 34: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땅 어느 한 구석이 하나님 창조의 목적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도록 섭리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입니다.

9.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빌 1:2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거저 받은 것이지만, 은혜를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주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10. 은혜로 승리하는 삶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히4:16”

십자가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다는 은혜의 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기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출처 : 갓피플 포스팅

 

    11. 주님, 제가 이 고난 중에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당신의 시련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체리 힐


풍랑의 순간에 우리는 “왜?”라고 하는 대신에 “무엇?”이라고 질문해야 한다.
“주님, 제가 이 풍랑에서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사용하고자 하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는 대신에 따지고 의심하고 탈출구를 찾는다. 어떤 시련을 겪든지 빠져나갈 계책을 모색하려고 고심하지 말라. 당신의 시련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분은 귀하게 사랑하시는 이들의 삶에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러니 명심하라.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시련과 풍랑을 겪을지라도 당신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내모는 모든 것은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당신이 추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은 고통을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
인생의 풍랑을 지날 때 길 잃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소망 없는 자들이 돌연 확신의 소망을 발견한다. 그들은 인생의 풍랑을 통해 믿음을 얻게 되고, 시야가 맑아지고, 빠르게 치유된다.

우리에게 가장 어두운 시간이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때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불행에 대처할 수 있고, 그분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믿기를 중단하는 믿음이 아니다. 신속하게 응답이 오지 않고, 상황은 더 악화되더라도 믿기를 중단하지 않는 믿음이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흉포하게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때를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건짐과 회복의 역사를 준비하셨다고 굳게 믿는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고 모든 인간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하나님의 가장 큰 이적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분의 이적만이 거친 풍랑을 잔잔하게 가라앉힐 것이다.

믿음은 시험과 시련을 받는다. 인생의 풍랑이 격노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때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 7:18)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10)

심지어 삶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끝내달라고 하나님께 청할지도 모른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 11:11,15)

물을 퍼내지도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민 11:23)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말했다.

“광야는 약속의 땅에 이르는 길이다. 패배는 승리를 준비시켜준다.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야 동이 튼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완벽한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은 우리의 모든 암흑을 광명으로 바꿔줄 것이다.


  * 출처 : 체리 힐 <흔들리지 마> 도서출판 규장

 

    12.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언약, 포기하지 않는 사랑...

  이시온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하고 그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하자. 이것도 서로 어떤 약속을 하고 지키기 위한 언약의 종류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언약 관계가 아닌 계약 관계라고 한다.

이 관계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한 당사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계약 관계는 바로 깨지게 된다. 게다가 계약 관계는 법적인 효력이 있어서,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관계는 대부분 계약 관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하지 않으셨다. 탁자에 앉아 종이를 가져다 계약의 내용을 적고 계약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는 벌금을 물기로 하고 사인을 하신 것이 아니다.

대신 하나님은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 언약 관계를 맺으신 이유는 한 가지다. 언약을 맺은 인간이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처음 말씀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경되지 않았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간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고 세상의 유혹과 탐욕에 사로잡히고 물질의 노예가 된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은 더 이상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 관계 따위는 더 이상 우리의 필요가 아니다. 인간은 매일 넘어지고 실수하고 방황한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언제든지 목자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시도한다.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이 언약 관계를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다. 포기하시거나 마음을 바꿔 내용을 조정하지도 않으셨다. 이 언약은 처음 말씀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경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약 관계를 깨뜨린 우리 인간을 향해서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지난겨울 한국에서 어느 교회 집회에 갔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집회여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갔다. 당시 큰 아이는 일곱 살이었고, 작은 아이는 어린이 선교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늦게 귀가한 탓에 그 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는 큰 딸아이가 먼저 일어났는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유치원에 가져갈 숙제를 하고 있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아내가 큰 아이가 쓴 것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아이가 조물조물 쓴 종이를 받아 들고 읽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언약
포기하지 않는 사랑,
내 품에 있는 사랑이니
넌 이 자리에 다시 올 수 있다.
자녀야,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삐뚤삐뚤 써진 아이의 글이 내 마음을 녹이고 나를 울렸다. 아이가 기특해서가 아니라 병든 어른들의 마음에서는 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순결하고 깨끗한 고백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 글을 어떻게 쓰게 된 거니?” 딸아이는 전날 아빠의 설교를 듣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 말이 떠올라 종이에 적고 싶었다고 답했다. 오랜만에 만난 먼 친척들에게 아이의 글을 선물했더니 그 분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언약의 자리를 떠나 살고 있는가? 이제는 돌아갈 곳도, 의지할 곳도, 사랑할 대상도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내 품에 있는 사랑이니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언제든지 내 품에 돌아올 수 있단다. 나의 자녀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 생각과 마음, 그리고 우리를 향한 끝없는 기다림이 바로 그것이다.


  * 출처 : 이시온 <천 번의 순종> 도서출판 규장

 

     13. 그럴 때 있으시죠?

  “나 같아도 그런 마음이 들겠다.”

  김제동


승엽이가 역전 이루타를 쳤습니다, 전 이걸로 됐습니다.
혁명.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켜보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11.08.02.트위터 -


좌절과 고난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요?
이거 사실 힘들죠. 저는 국진이 형과 재석이 형에게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재석이 형이 제게 자주 해주는 얘기가 있어요.

“나 같아도 그런 마음이 들겠다.”
위인전 같은 얘기라서 하기 싫었지만, 어떤 충고나 조언보다 훨씬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게 바로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 감정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가 아닐까 싶어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몰아붙이면서 “빨리 벗어나라” “탈출하라”하는 게 아니라 나를 조금 더 충분히 쉬게 해주는 거죠. 그러다보면 때때로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다 영원히 쉬게 되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감을 달래줄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힘들 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국진이 형인데, 저희가 나누는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에요.
“형, 제가 요즘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네가 볼 때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것 같냐?”
“형은 진짜 잘 사는 거죠.”
“그게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별로 주고받은 얘기도 없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어요.
“형,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그게 맞아.”
“그런데 형, 이렇게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그래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좀 그럴 것 같은데.”
“그럼, 하지 마”

재석이 형이나 국진이 형은 제게 충고 한마디 하지 않지만, 형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너 그대로 충분히 괜찮아.”
형들의 말에, 그전까지 크게 느껴졌던 문제들이 어느새 별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힘들었던 고비마다 형들이 있어서 잘 넘어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게 없었던 아빠처럼, 친형처럼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있어서요.

혹시 지금 옆에 누군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물어봐주면 어떨까요.
“괜찮니?”
그리고 얘기해주세요.
“나 같아도 그런 마음이 들겠다.”
“네 말이 맞아.”

제겐 도움이 된 말들이었는데,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 출처 : 김제동 <그럴 때 있으시죠?> 중에서 발췌

 

     13. 한비야의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들

  근데, 그게 내 잘못이야?

  한비야(국제 구호 전문가)


 “와아, 이거 먹을 수 있는 버섯 아니에요?”
 “오, 노우! 이건 독우산광대버섯이에요. 치명적인 독이 있어서 먹으면 큰일 나요.”
 “아니, 무슨 독버섯이 이렇게 평범하고 수수하게 생겼어요?”
 “글쎄 말이에요, 독버섯답게 예쁘고 화려해야 금방 알아볼 텐데 사람 헷갈리게 하죠? 하하”
 동생이 버섯 농사를 지어서일까? 요즘은 산행 중에 야생 버섯을 만나면 괜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산느타리버섯, 목이버섯, 청머루 무당버섯...
특히 비가 온 뒤나 깊은 산속에서는 갖가지 모양과 색깔과 크기의 버섯을 만난다. 우산, 달걀, 접시, 말뚝 모양에 빨강, 노랑, 분홍, 하양, 연고동색에 새끼손톱만 한 것부터 손바닥보다 큰 것까지 가지가지다. 산속에 이렇게 각양각색의 버섯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산행 경력 40년 이상인 내 산 친구들은 나무, 야생화, 산나물은 물론 버섯에도 일가견이 있어 무엇을 물어도 곧바로 답이 튀어나와 속이 시원하다.
 공교롭게도 그날 만난 버섯은 하나같이 독버섯이었다. 독버섯은 하나라도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스틱 끝으로 뭉개며 다녔더니 그 친구가 펄쩍 뛰며 말린다. 독버섯이 있어야 산에 좋다는 거다. 뭐라고? 그럴 리가 있나? 친구 왈, 우리는 버섯을 식용 버섯과 독버섯으로 나눠 놓고 몸에 좋다 나쁘다만 따지지만 그건 순전히 사람 생각이란다.
 “그럼 버섯 생각은 어떤데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 친구가 신나서 대답했다.
“독버섯이든 식용 버섯이든 모든 버섯은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예요. 죽은 동물과 식물의 사체를 썩혀 분해해 자연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자연을 깨끗이 정화하거든요. 그래서 버섯을 자연의 청소부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니 독버섯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자기는 버섯으로서 맡은 청소부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람이 멋대로 공포의 대상이자 없애야 할 존재로 만들었으니까요.”
 으음,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다. 문득 독버섯에 얽힌 유명한 네덜란드 작가의 동화가 생각난다. 아버지와 아들이 숲을 산책하다가 돗버섯을 보았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버섯을 가르키며 “저건 독버섯이야. 우리를 죽이는 흉악한 놈이지.”라고 말했다. 폭언을 들은 독버섯이 기절할 듯 낙담했다. 그걸 보던 친구 버섯이 이렇게 말한다. “그건 저 사람의 말이야. 왜 버섯인 우리가 사람의 논리를 따라야 해? 너는 그냥 너일 뿐이잖아?”
그렇다. 독버섯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독을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자연계의 독 있는 존재들이 그렇듯이 독버섯도 생존을 위해서, 자기를 지키거나 번식을 위해서 독이 필요한 거다. 그러니 독을 가지고 태어난 게 어찌 독버섯의 잘못이겠는가?
 잘잘못 얘기를 하니까 어렸을 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동네에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내 또래 남자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공놀이나 뜀뛰기는 못해도 팽이 돌리기나 딱지치기는 동네 제일이어서 인기가 좋았다. 우리는 학교에 갔다 오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골목길에서 해 지는 줄 모르고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에게 딱지를 몽땅 다 잃은 사내 녀석이 분했는지 갑자기 이 친구 걷는 시늉을 하면서 “야, 쩔룩발이, 진짜!”하는 게 아닌가. 놀란 우리는 일제히 그 험한 소리를 들은 아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친구, 한참 동안 그 사내 녀석을 노려보더니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그래, 나 병신이다. 근데, 그게 내 잘못이야?”
그렇다. 살다 보면 겸허하게 ‘내 탓이요.’라고 할 때도 있어야겠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판단할 때, 이 친구처럼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용기 있게 맞설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남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전혀 주눅 들 필요 없이 ‘자기 존재의 이유’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거다.
그날 산행 길에서 내가 뭉개려던 독버섯들도 분명히 이렇게 말했으리라.
“그래, 나 독버섯이다. 근데 그게 내 잘못이야?”


  * 출처 : 월간 도서 <좋은 생각> 한비야의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들에서 발췌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점자새빛(겨울호)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중앙로 97 - 1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06570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 02-533-9863,4
 지참 서류 : 장애인등록증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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