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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가을호 묵자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4-05-12 12:18 조회5,116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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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자 새빛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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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년 11월 3일
등록 번호: 서초 바00097
제54권 3호 통권338호
발행일: 2013년 9월 15일
주소: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97-1
전화: 02-533-9820
발행겸 인쇄인: 안요한
인쇄처: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1. 이호의 시: 예수님이 하셨습니다(송명희)
2. 이호의 말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정광재 목사)
3.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아들! 고마워(박태림)
4. 주제가 있는 글: 자존감 대 자존심(정균승)
5. 짧은 글 긴 생각: 사람이 재산이다(박형미)
6. 건강하게 삽시다!: 잘못 알려진 당뇨상식(김광원)
7. 가을에는 책을 읽읍시다!: 1000명의 아버지(강유성)
8. 이호의 인물: 당신의 인생은 빛나고 있나요? 행복한 육아일기 박정희 할머니(더서드에이지)
9. 생각의 여유: 지도자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하남직)
10. 알아봅시다!: 하품은 왜 할까? 당신이 몰랐던 6가지(조현욱)
11. 생명의 양식: 천국보화의 발견

  1. 이호의 시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송명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2013년 5월 17일자 발췌)

우리가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소금처럼 녹으셨습니다
우리가 밀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고 썩으셨습니다.

우리가 멍에를 싫어하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강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상한 갈대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세상 지혜로움이 극하여서
예수님이 미련한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가 너무 높아져서
예수님이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예수님이 좋아 하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2. 이호의 말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
  정광재 목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오늘의 설교 6.10일자 발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실로 엄청난 대축복의 사건입니다. 영적으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세상에 속해 세상의 가치로 살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져 하나님의 진리로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어 나를 위해 살던 우리가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큰 은총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삶의 여러 영역에서 내가 추구하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옛 본성을 보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죄의 근원이며 삶의 환경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며 형상회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복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죄로 우리는 그 형상을 잃어버렸고, 땅과 모든 생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지 못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형상 회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양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의 모양, 하나님의 DNA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유전자, 즉 DNA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인간에게도 있는 것을 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도덕적 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상회복을 간략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형상회복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회복돼야 한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 회복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내면은 이미 죄와 상처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면의 복구가 우선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상처치유, 내면의 치유라고 하며, 이것이 형상회복의 첫걸음인 것입니다.많은 성도들의 신앙이 지식으로 아는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열매로 그 사람을 안다고 하셨습니다(마 7:20).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마 7:17). 처음부터 좋은 열매를 한꺼번에 많이 맺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믿음을 행할 때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분명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의 실천을 통해,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아들! 고마워
  박태림(월간 ‘좋은생각’ 3월호 오픈콘텐츠 발췌)

 아들이 열네 살 때 이곳 교도소에 왔다. 삶의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가정에 어머니와 아들만 남겨 둔 채.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어느덧 스무 살이 된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는다.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해 전방에서 6년 동안 기술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제대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20여 년간 농사지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장사를 권했다. 그 말에 솔깃해 신통치 않던 농사를 접기로 마음먹었다. 이천여 평의 땅을 정리한 돈으로 생선 도매업을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300킬로 떨어진 부산 감천동의 냉동 창고에서 조기, 꽁치, 오징어 등 원양 수산물을 사다 생선 가게에 파는 일이었다. 장사가 잘 되어 떳떳하게 가장 노릇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장사와 농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예전이 그리웠지만 당시 농사짓는 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있다. 농작물을 일굴 땅도 없고 고향을 떠나 주변 도시로 이사한 상태였다. 게다가 말주변이 없어서 하면 할수록 힘에 부쳤다. 물건은 제때 가져다주었지만 물건 값을 받아 내는 재주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어머니, 아들과 최소한의 생계는 꾸려야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성장이 더뎌열네 살인데도 몸이 왜소하고 걸음걸이마저 정상적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텔레비전 광고를 보던 아들이 “어린이 영양제 사 주세요.”라고 애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물건 값을 받을까 하는 생각뿐이었기에 미처 아들 마음을 읽지 못했다.
 결국 밑천이 바닥났고, 장사를 접어야 할 지경까지 왔다. 가세는 기울고, 가정에도 점점 소홀해졌다. 아들은 스트레스성 대사 증후군이란 병까지 얻었다. 어리석었던 나는 그 와중에도 한 가지 궁리를 했다. 몸이 성치 않은 아들을 앞세워 물건 값을 받으려 했다. 아들을 트럭에 태우고 가서는 건물 옆에 쪼그리고 앉혀 연민을 끌어내 한 푼이라도 받을 속셈이었다. 그러나 종일 밥을 굶으며 펼친 시위도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갈 길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이곳에 들어왔다. 아들을 보살펴 주지 못해 가슴이 쓰렸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주어지는 통화 시간이나, 매월 쓰는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아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사랑해.”
 담장 안에서 내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다행히 아들 곁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걸까. 아들은 클수록 병세가 호전됐고 체구도 또래 아이들 못지않다. 건강도 되찾았다. 일흔 다섯인 어머니의 손자가 하루하루 어엿하게 자라는 모습을 ‘희망의 메시지’처럼 편지로 써 보냈다.
 여기에 기분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얼마 전 아들 담임섬생님이 어머니를 찾아와 말했단다.
 “아이가 무엇이든 만들라 하면 척척 완성입니다. 성적은 낮지만 손재주가 남달라 학교 추천으로 공업 전문대학에 갈 수 있어요.”
 어머니와 아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대학 갈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 소식을 담장 안에서 듣는 못난 아빠지만 진심을 담아 아들에게 답장을 쓴다.
 “아들, 그때그때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중에 꼭 후회하더구나. 지금 함께 하는 할머니, 선생님,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기 바란다. 항상 건강하고 꼭 꿈을 이루길 기도할게.”


  4. 주제가 있는 글

  자존감 대 자존심
  정균승(서울의회 제155호 행복우체통 발췌)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제와 부딪힌다. 때로는 기존의 생각이나 행동들 가운데 버려야 하거나 바꿔야 할 것들도 생긴다. 그때마다 우리는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말끔히 해결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인가. 설사 내가 실수나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순순히 인정하고 앞으로 더 잘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이때 우리는 ‘자존심’을 살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자존감’을 살려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우선 자존심과 자존감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만일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 다 똑같이 존중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자존심이 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또한 자존심은 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의 소산인 반면,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려는 마음’의 발로라는 점에서도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존심의 뿌리는 우월감과 열등감이다. 반면 자존감의 뿌리는 자긍심과 자신감이다. 따라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남들에게 열등하게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남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상대방에 의해 묵살되거나 거부되는 것에 크게 반발한다. 소위 자존심을 상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긍심이 강하고,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 또한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도전적이고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모든 관심사가 주로 밖을 향한다. 그래서 외모나 학벌 또는 배경을 중시하고 남과 능력을 비교하거나 경쟁하기를 즐긴다. 자존심이 강할수록 타인과 비교해서 외모나 학벌 또는 다른 능력에서 자신이 앞선다고 생각하면 우쭐대고 만족해하지만, 조금이라도 뒤진다고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힘들어한다.
 반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관심사가 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 따라서 자신이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존중하려고 애쓴다. 당연히 남을 인정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면 저절로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려고 한다. 완벽한 인간이 아닌 이상 자신도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지적이나 충고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마음을 연다.
 살면서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존감과 자존심을 혼동하면 안 된다. 자존감이 주인의식의 발로라면 자존심은 노예의식의 소치다. 그래서 지나친 자존심은 자신을 과잉보호하기 위해 늘 반발하고 저항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작 지켜야 할 것은 ‘노예적 자존심’이 아니라 ‘주인적 자존감’이다. 자존심이 남과의 투쟁이라면 자존감은 자신과의 투쟁이다. 그 결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은 늘 패자가 되기 쉬운 반면, 자존감을 지키려는 사람은 나날이 나아지는 사람이 되어간다.

 

  5. 짧은 글 긴 생각

  사람이 재산이다
  박형미(매일아침 소리잡지에서 발췌)

 잘나가던 전 직장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두고 몇 개월간 번민과 방황을 겪을 때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수확한 옥수수를 남들에게 다 ‘퍼 주고’ 정작 집에는 빈 수레로 들어서곤 하셨다. 또 함께 일하는 인부들을 좀 더 일찍 집으로 보내기 위해 불필요한 인부 몇 명을 더 쓰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모습은 창업을 고민하며 ‘돈’과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에게 앞길을 환히 알려 주었다. 결국 나는 벌어 놓은 돈으로 편히 먹고 살 생각을 버리고, 배신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 창업의 중심을 두었다.
 나는 사원이든 지점장이든 학벌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의지’이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겠다는 강인한 의지, 가난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 신용불량자라 하더라도 힘차게 재기하겠다는 의지.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 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사무실 의자를 채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썩은 사과가 한 개 라도 있으면 금방 상자 안의 사과가 모두 썩듯이, 사원들 중에 나약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머지 사원들도 모두 나약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빨리, 철저하게 단절시켜야 한다.
 얼마 전 세계 5위권에 드는 굴지의 화장품 회사가 국내에 상륙해 직영점을 개설하고 내로라하는 영업 인재들을 스카우트했다. 그 회사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전혀 신통치가 않았다. 문제는 ‘일’보다는 ‘자리’에만 연연하고 이해득실에 따라 수시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을 뽑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닥부터 뛰어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럴 자신이 있으니 자기의 안정된 위치, 다시 말해 ‘자리’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관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리 없다. 그리고 그런 관리자를 믿고 자신의 미래를 맡길 영업사원도 없다. 한마디로 그들은 한국의 실정을 너무 몰랐다.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회사들이 무너지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세상에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했다. 노력이 빠진 부, 양심이 빠진 쾌락, 인간성이 빠진 지식, 도덕이 빠진 상업, 인간이 빠진 과학, 희생이 빠진 기도, 진실이 빠진 정치가 그것이다. 노력과 양심, 인간성과 도덕, 인간과 희생, 그리고 진실은 돈보다 사람에 초점을 두는 휴먼 경영의 출발점이다.


  6. 건강하게 삽시다

잘못 알려진 당뇨상식
김광원(삼성서울병원 건강정보에서 발췌)

당뇨병 환자가 정말 많아졌다. 집안일 때문에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 하다 보면 우연히 당뇨병이 화제에 오를 때가 많다. 집안에 혈당측정기가 있으면 쭉 둘러 앉아 일제히 혈당을 측정해보면 자신도 몰랐던 당뇨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우리 나라 당뇨병 환자의 약 60%는 자신이 당뇨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 여기에 당뇨병에 대한 잘못된 의학상식도 당뇨병 치료에 걸림돌이 되곤 한다.

증세가 없으면 치료할 필요 없다?
대부분 당뇨병 환자는 증세가 없다. 흔히 당뇨병에서 나타난다고 하는 물 많이 마시고, 음식 많이 섭취하고, 소변량이 많아지는 등의 증세는 당뇨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 나타난다. 따라서 본인이 괴롭지 않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당뇨병의 합병증은 눈치 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파고든 후에 본색을 드러낸다. 이 때는 이미 합병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몸의 상태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증세가 없어도 당뇨병은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단방약을 찾는다?
흔히 당뇨병에 걸리면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한다. 또 한 번 또는 몇 달의 치료약으로 완치할 수 있다는 광고가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당뇨병을 한 번 치료로 완치하는 단방약은 없다. 피 속에 있는 포도당은 없애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 속에 포도당이 없으면 저혈당으로 사람이 죽는다. 적당한 정도가 있어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 너무 많아서 넘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사는 것이 당뇨병의 치료이다. 마치 물이 없으면 가뭄으로 생명체가 없어지고, 너무 많으면 홍수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치와 같다.

한번 먹으면 평생 약을 못 끊는다?
환자들에게 치료약 복용을 권하다 보면 한사코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약을 끊을 수 없고 약이 독하기 때문에 몸에 생기는 부작용을 우려해서이다. 일단 약을 복용하면 정말 끊을 수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혈당이 높으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시키면 당뇨 치료약은 끊어도 계속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나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혈당이 정상으로 떨어질 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치료약을 사용해야 할 때는 약의 용량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물론 약을 복용해야 되는 시기는 전문의가 결정하는 것이며 상당한 수의 환자들은 약을 끊고서도 정상 혈당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약의 부작용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약 부작용이 1이라면, 혈당 조절로 얻는 이득은 10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완치는 불가능하다?
완치는 모든 당뇨병 환자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이 있었다. 당뇨병 치료의 최근 뉴스를 접하다 보면 수년 내에 당뇨병이 완치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기도 한다. 그렇다. 난치성 당뇨병 환자의 치료에 큰 서광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당뇨병이 왜 생기는 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뇨병은 생활습관 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즉 부적절한 식사, 움직이지 않는 습관,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다. 생활습관의 개선 없이는 어떠한 첨단 치료법도 소용이 없다. 완치될 수 있다는 첨단 치료법이 언제쯤 현실화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생활 습관의 개선이 어떠한 첨단 치료법 보다 더 당뇨병 치료에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많다.

병원만 오면 혈압이 올라간다?
당뇨병 환자에게서 고혈압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같은 원인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고, 당뇨병의 결과로 생길 수도 있다. 원인이든 간에 당뇨병에 동반된 고혈압은 당뇨병 합병증을 악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위험인자이다. 고혈압 치료를 권하면 상당히 많은 환자들은 ‘집에서는 정상인데 병원에만 오면 왜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 혈압이면 괜찮지 않나요? 혈압약도 한 번 먹으면 일생 끊지 못한다면서요’ 등의 이유를 든다.
정상인의 혈압은 안정된 상태에서 높은 혈압 100~110이고 낮은 혈압 70~80 를 유지한다. 따라서 이 이상이 되면 치료해야 한다. 당뇨병에 고혈압이 동반된 경우에는 혈압 조절을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40/90이 넘으면 고혈압이라고 하지만, 당뇨병이 있을 때는 130/85가 넘으면 고혈압으로 간주하고 치료하도록 권하고 있다.

운동은 체육관에서 해야 한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생활습관이다. 당뇨병에서도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운동이라고 하여 특별한 계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에어로빅, 휘트니스 클럽, 운동 동호회 등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여 정기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면 매우 좋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운동을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운동이라는 표현보다 ‘움직이는 생활’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가능하면 많이 움직이고 집에 있는 자동화 기계는 치운 후 만보기를 차고 다니면서 매일 걷는 양을 점검하는 등 움직이는 생활을 습관화 한다. 이러한 개념이 진정한 의미의 운동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7. 가을에는 책을 읽읍시다!

  1000명의 아버지
  강유성(‘복지저널’ 제56호 문화 북리뷰에서 발췌)

‘1,000명의 아버지’는 한국저쟁 중 북한군이 서울을 침략했을 때 1059명의 고아들을 구한 미국 공군 군목인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의 놀랍고도 감도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인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은 미네소타주 헤이필드에서 8남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나, 대공황을 거치며 어렵게 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마친 후 그의 모험심에 이끌려 미국 공군에 지원하게 됐다. 그는 제2차 대전 중 알래스카와 남태평양에 있는 미 공군 전초부대에 배치되었으며 마침내 한국전쟁 시에 한국으로 오게 된다. 한국전쟁은 약 200만 명의 북한군과 한국의 민간인 사망자 수에 비해 대략 3만 7천명의 미군 병사가 사망할 정도로 치열한 전쟁이었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임무수행과 더불어 1950년 7월 미 제5공군사령부의 군목할동을 지휘할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군목 블레이즈델은 한국에 도착한 후 지휘를 할 다른 군목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블레이즈델과 그의 친한 친구인 군목 윌리 울버튼 대령은 그들의 공군 부대에서 인도주의적으로 가장 급박한 문제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는데 바로 당장 먹을 음식과 응급조치가 필요한 고아들에 관한 문제였다. 대구를 거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를 “서울 거리를 차로 지날 때마다 그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병에 시달리고 해충으로 뒤덮여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와 미군 장병, 자원봉사자들은 고아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몰두했다. 하루에 50여명 이상의 고아들을 사회복지시설에 데려간 날도 있었다. 처음에 울버튼과 블레이즈델은 집 없는 아이들을 서울 고아원에 데려다 주는 일에 힘썼다. 그러나 고아원이 꽉 차게 되자 약 천명의 고아들이 음식과 옷,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금자리인 서울 고아 수용센터를 창설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10월 초 울버튼이 강제로 서울을 떠나게 되자, 블레이즈델은 혼자서 모든 고아와 관리직원들을 책임지게 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변했다. 1950년 11월 20일에서 12월 20일가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서울에서 연합군을 몰아냈고,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으며 시장과 관리들도 피신했다.
 블레이즈델 군목은 후방으로 떠나는 군부대 차량 등을 통해 고아들을 실어 보냈지만 서울엔 여전히 천명의 고아들이 남아 있었다. 제5공군부대의 군인들도 철수했지만 블레이즈델 군목은 고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거절했다.
 적군의 맹공격을 피해 블레이즈델은 고아들을 인천항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선박을 찾기 위해 그들을 3일 동안 차 한 대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차에 태워 몰고 갔지만 그 배는 바다에 뜨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것이었다. 절망에 가득 차 다시 서울로 돌아온 블레이즈델은 적군이 서울에 들이닥치기 직전인 12월 20일,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공군 장교 중 한 사람인 로저스 대령을 만나게 됐다. 로저스 대령은 작전장교였으며 공군사령관을 제외하고 고아들을 구출할 화물수송기를 이륙 명령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극적으로 로저스 대령을 통해 제주도로 향하는 수송기 16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그날 밤 인천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미 해병대의 트럭을 동원해 고아들을 인천에서 김포공항으로 옮겼으며 1950년 12월 20일, 드디어 그들 모두가 안전하게 제주도에 공수될 수 있었다.
 그 일로 블레이즈델 군목은 나중에 미 공군 군목회의 감찰관에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 때, 그는 “저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군목의 일이 고아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적지에 남겨 두어 죽게 하는 것이라면 저는 당장 전역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군종감실(군대 내의 종교활동과 윤리 교육을 맡아보는 특별 참모부서)과 연관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블레이즈델 목사는 “하나의 좋은 행동은 또 다른 좋은 행동을 낳는다.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 하든 그 일을 하라”는 말을 회고록에 남겼다.
 50년 후 블레이즈델은 그에 의해 구출되었던,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어 그들의 가족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고아들과 고아원 원장인 황온순 여사를 재회했다.
 또한 한국 영부인, 총리와 만남을 가졌으며, 경희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는 등 한국의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게 됐다. 2003년 블레이즈델 군목은 그의 드높은 인간애로 미국 공군 군목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인 ‘4군목상’을 받았다.
 천명의 고아를 살린 한국판 ‘쉰들러리스트’ 러셀 블레이즈델의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를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저자소개
미 공군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은 1950년 12월 20일 1.4후퇴 직전에 대구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미군 수송기 16대를 동원하여 서울에서 인천, 인천에서 김포, 김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5일간의 여정을 통해 한국전쟁고아 1059명을 구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영화 ‘전송가’를 통해 ‘미 공군 어린이 구출작전’의 주인공이 딘 헤스 미 예비역 공군 대령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충현원 유혜량 목사가 블레이즈델 목사를 만나면서 빛을 보게 된다.
 50년이 지난 2001년 7월에 그는 성인이 된 수많은 당시의 고아들과 고아원장과 재회하였으며 한국 대통령의 영부인과 국무총리, 재향군인회에서도 그에게 경의를 표했고 경희대학교에서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고, 고아원장은 구원자라고, 한국의 언론들은 ‘한국 전쟁의 쉰들러’라고 불렀다. 2001년 2월 19일, 그는 톰 부러커의 NBC저녁 뉴스에 출연했다.
 91세 때 블레이즈델 목사는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떠난다는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다. 고아 수송작전은 용기가 아니라 책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한국어 판권을 충현원에 희사했고 200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9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000명의 전쟁고아들을 구한 그의 삶은 이후 아들 카터 블레이즈델 목사 등의 도움으로 사망 1년 만에 회고록으로 다시 태어났다.


  8. 이호의 인물

  당신의 인생은 빛나고 있나요? 행복한 육아일기 박정희 할머니
  더서드에이지(한화.한화인 제504호 희망인터뷰에서 발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흔이란 나이는 아주 멀고도 까마득하다. 그리고 외람되게도 그들의 인생에는 이제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일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 그들의 하루하루는 젊은 우리보다 더욱 찬연하고 보석처럼 빛난다. 그들에게는 지나온 인생이 길러온 자기 자신 속의 현인이 있고 오늘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할머니는 그러한 아름다운 노년의 결정체와도 같다. 그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다섯 남매를 키우며 직접 그리고, 쓰고, 제본을 엮어 만든 다섯 권의 육아일기 때문이다. 시대상까지 꼼꼼하게 엮은 그 책이 인쇄본으로 출판되며 그의 주변은 유독 북적였다. “우리 집에서는 발에 채이며 굴러다니던 것인데”라며 웃는 그는 “다른 집에서도 다 그렇게 만들어 주는 줄 알았다우”라며 주변의 소란에 어리둥절해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하나. 1923년, 그는 일제 강점 하에서 한글 점자를 만들어 낸 송암 박두성 선생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경성여자사범학교에 들어가 일본 여학생들을 제치고 우등으로 졸업, 교사 생활을 했던 당시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런 그가 당시 자신에게 손 내밀던 수많은 혼처를 뒤로하고 운명처럼 만나게 된 남편은 하필이면 대식구가 남편의 월급 80원에 의지해 살아가는 가난하디 가난한 의사였다. 시부모님과 시동생들까지 적을 때가 열댓 명이었던 대식구가 좁은 집에서 복닥이며 ‘식량을 대느라 고생’일 정도로 지독하게도 어려웠던 삶. 그리고 해방과 전쟁, 피난과 새 살림. 이 격량 속에서 들어선 아이들. 요즘 세대는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한 삼중, 사중고를 이야기 할 때도 그는 화사하게 웃는다. 그 와중에 어떻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느냐 물었다. “그땐 그래도 벅차고 즐거웠던 일이었다우.”
 사범학교를 나왔지만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았던 터라 미술에도 제법 재주가 있기는 했다고 한다. “우리 친정과 시댁은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가세도 다르고 가풍도 달랐지요. 그런데 우리 두 집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집 안에 일본의 물건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송암 선생도 그러했지만, 독립운동으로 옥살이를 한 시아버지 유두환 목사 또한 서슬이 퍼런 어른이었다. 그런 그에게 천금처럼 기회가 주어졌다. 교사로 재직할 당시 친분을 쌓았던 일본인 음악교사가 해방 이후 한국을 떠나며 선물로 주고 간 미술도구를 어머니가 맡아두었다 건넨 것이다. 강가로 빨래를 하러가다 빨래하는 아낙들의 풍경이 너무 예뻐 그 길로 빨래를 내팽개치고 그림을 그리며 너무나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는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벅참이 60년 세월을 지나 전해진다. 그런 그이니 어쩌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도 직접 그리고 쓰겠다고 생각한 것이 별난 결과는 아니었으리라.
 “어느 날 우리 명애(첫째 딸)가 오더니, ‘어머니 나도 그림책 하나만 사주어요.’하길래 좋다 하고 돈을 들고 책을 사러 나갔지요. 그런데 어쩌나.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지 않겠어요? 그림이 마음에 들면 글이 시원찮고, 글이 좋으면 그림이 엉망이고. 그래서 빈 손으로 돌아오는데 아이가 그러더군요. ‘어머니, 나는 그림책을 못 가지나요?’ 그러기에 ‘아니야 어머니가 만들어줄거야’ 약소했죠.”
 그렇게 첫 번째 일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 넷째를 지나 막내 아들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제호로 한 다섯 권의 일기가 완성됐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아이들이 태어나 한글을 배울 때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배경이 어떠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축복과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었는지를 기록해 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육아일기를 청했다. 출판된 책도 있지만 아름다운 실물이 궁금했다. 국가기록원의 요청으로 기증했다가 반환을 요청해 가지고 있는 보물들. 그의 맏사위인 서울대 권태환 명예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집 가보’인 그 일기들을 열었다. 끔찍하게도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교회 주보 뒷면에도 쓰고, 쌀 포장지에도 쓰고, 깨끗한 빈면이 있는 종이라면 알뜰하게 챙겨 썼다. 모두 손으로 꼼꼼히 바느질한 제본에 고운 천들이 덧대져 있다. 아이를 업었던 포대기를, 입다 버리게 된 헌 옷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 아이들 육아일기의 표지로 썼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 한 자 한 자 교과서에 나올 법한 글씨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목차를 훑어내려 간다. 넷째 딸 ‘순애’의 편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아이들의 주변을 기록했는지 드러난다. 순애를 낳던 날과 시간, 너를 낳았을 때의 식구들, 너를 낳았을 때의 세계 정세, 순애를 낳은 율목동 집, 순애가 자라난 화평동 집, 이름과 별명, 순애를 낳았을 때의 아버지, 어머니, 순애가 좋아한 음식, 순애를 길러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한 살 때부터 일곱 살 때까지의 기록. 마지막으로 너를 가르쳐주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이름들까지.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나는 데 이만큼 완벽한 콘텐츠가 또 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엄마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상황속에서 너를 기르고 있는지 공치사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한다는 자체만으로 모든 수식어를 압도하는 사랑이 전해지는 것이다. 큰 아이가 중학교를 수석 입학하며 입학선서를 하는데도 지켜보지 못했을 정도로 하루하루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는 틈날 때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남기며 그 속에 언젠가는 발견될 진주 같은 마음을 심어두었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 이 육아일기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모두 성혼하여 집을 떠날 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제각각 챙겨갔다는 것도 몰랐다고. 어느 날 결혼한 큰 딸로부터 “권 교수가 우리집 가보 운운해 창피해 혼났다”고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기억이 났다. 딸로부터 받아와 수십 년 만에 다시 그 일기를 열었을 때 그는 방 한구석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진료 중에 집에 들러 “뭘 보고 그렇게 우느냐”해서 일기를 들고 나간 남편도 진료실 한 구석에서 그 일기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두 부부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옛 기록들을 보며 한탄과 감탄이 뒤섞인 감격을 맛봤다.
 그를 ‘유명인사’ 반열에 올려놓은 이 육아일기 이외에도 그는 왕성한 기록가이자 수집가이며, 창작자다. 그의 집 장롱에는 언제부터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가계부와 일기와 에세이가 있다. 여전히 그는 하루 한 점의 그림을 그리고, 200자 원고지에 일상을 기록한다. 자신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를 놓지 않으려는 그 안간힘이 한국 점자 역사를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아버지가 남기신 메모, 아버지가 작업하셨던 책들이 빼곡이 나왔어요. 그걸 오빠들이 다 버리려는 걸 내가 손수레에 잔뜩 싣고 챙겨왔지요.” 그 물품들은 남편도 “뭐하러 챙겨왔냐”고 하는 걸 보이지 않게 천장에다 꼭꼭 숨겨두었다. 그리고 1999년 인천시 시각장애인복지관이 개관될 때 모두 기증했다.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박두성 선생의 1931년 성경 점자 원판 작업에는 박정희 할머니가 일조하기도 했다. 겨우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아버지가 점자를 새기실 수 있도록 옆에서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인 것이다. “겨우 열 살 남짓한 꼬맹이인데, 실수가 왜 없었겠어요. 얼마나 호통을 치시고 꿀밤을 때리시는지 하도 머리를 맞아서 멍텅구리가 되거나 엇나갈 수도 있었던 것을 그러지 않고 이렇게 반듯하게 자랐으니 감사해 하시라고, 아버지가 나이 많이 드신 후에 얘기했었죠.”
 그리고 그 후로도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를 또 한참 들려주었다. 엄격했던 아버지를 나약한 남자로 인정하게 된 이야기, 평양 사투리를 일본어로 번역해주어야 알아듣던 새색시 적 이야기, 얼렁뚱땅 살림을 흡수합병한 얄미웠던 시동생들 이야기까지. 때로 그것은 정신없이 빠져드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역사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는 취재진에게 부탁한 것은 단 하나. ‘나를 포장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부풀려질 사람도 아니니, 그저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라고 써달라 얘기하며 ‘오늘에 감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오늘 이렇게 주어진 날들이 있으니 우리는 좋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요. 내 곁의 아이들도 얼마나 예쁜가요? 우리는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그저 충실히, 재미있게 살아가야지요.”


  9. 생각의 여유

  지도자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하남직(일간스포츠 2013년 6월 12일자에서 발췌)

"경제 위기라는데, 모두 사장님들 책임입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중견 기업 사장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건넨 말이다. 대기업 강연에서는 더 날카롭다. "일류기업이 왜 이류기업만도 못한 생각을 합니까." 강연 초반에는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도 꽤 많다. 강연이 끝나면 "또 와주실 수 있습니까"라는 요청을 한다.
 김 감독은 인기 강사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듣기 거북할 만큼 따끔한 지적을 쏟아내지만 강연을 끝까지 듣다 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야구만큼, 강연도 독하고 강하다.
 김 감독은 지도층에게 "부하 직원을 얼마나 믿습니까"라고 자주 묻는다. 대부분 "직원들을 믿고 일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당신은 부하 직원들이 절대적으로 믿는 리더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이때 자신있게 답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김 감독은 "리더와 조직원의 목표가 하나가 될 때 그 조직은 성공합니다. 조직원들이 자신을 100퍼센트 신뢰하도록 만드는 게 리더입니다"라고 말한다. 박수가 쏟아진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고양시 야구국가대표 훈련장. 내야수 김정록이 감독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독립야구단 원더스가 배출한 11번째 프로 선수다. 김정록은 "감독님, 저 오늘 넥센으로 갑니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끝이 아니다. 잘해라"라며 손을 내밀었다. 김정록은 김 감독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프로 선수와 사진을 찍으니, 영광이네"라는 농담을 건넨 김 감독은 무심하게 "저기 배트 한 자루 가져가라"고 말했다. 김정록은 핑 도는 눈물을 꾹 참았다.
 김정록은 2011년 12월25일 해병대에서 전역한 뒤 원더스에 입단했다. 2008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한 그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고, 일본 키위국제대학에 입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군입대했다. 김 감독이 기억하는 김정록은 '발만 빠른 선수'였다. 훈련 때도 타구가 내야를 겨우 넘어갔다. 김 감독은 김정록의 장점부터 봤다. 그리고 단점을 고쳐나갔다. "야, 해병대. 스윙 100번 해라." 김정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붙더라"라고 했다. 그는 올 시즌 첫 퓨처스리그 경기(4월19일 엘지전)에서 결승홈런을 쳤다. 김정록은 고양을 떠나며 "'김성근 감독님께 배운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뛰겠다"고 했다.
 김 감독은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누구나 장점이 있다. 리더는 장점을 발견할 눈을 가져야 하고, 그걸 살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고양에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해 프로에서 외면받은 선수들이 모여 있다. 김 감독의 다른 눈과 다른 생각으로, 그들은 다른 선수가 된다.
틀과 상식에서 벗어나라
 김 감독은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를 챙겨봤다. "서브를 할 때 오버핸드스로 투수를, 포핸드 스매시가 나올 때는 사이드암 투수를 떠올렸다." 김 감독은 이상훈 고양 투수코치에게 "배드민턴 라켓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김 감독은 원더스 투수들에게 배드민턴 라켓을 먼저 쥐게 했다. "느낌이 오나"라고 물은 뒤 야구공을 건넸다. "그렇지. 지금 그 느낌이야." 테니스를 봐도, 배드민턴 라켓을 쥐어도 결국은 야구 얘기다.
 야구 인생 60년. 그가 더 배울 게 있을까. 김 감독은 "리더는 조직의 어떤 구성원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감독이 코치에 의존하면 그 팀에 한계가 생긴다. 투수와 타격, 수비 분야 모두에서 최고 전문가가 돼야 팀을 이끌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사회 지도층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위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더 혈연·지연에 의존하고,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리더는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고이면 조직이 썩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도전하고, 앞서가라"고 조언했다.
 김 감독은 최근 지인으로부터 "푸른 장미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염색으로 만든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 2004년 오스트리아와 일본의 공동 연구팀이 유전공학을 이용해 진짜 푸른 장미를 만들었다. 꽃말은 '기적, 해낼 수 있는 일'로 바뀌었다. 김 감독은 늘 세상과 싸웠다. 그 결과는 열두 번의 해고였다. "나는 잘렸지만, 선수들 연봉은 올랐잖아, 허허." 그라운드 곳곳에 그가 심어놓은 푸른 장미가 자라고 있다.


  10. 알아봅시다!!

  하품은 왜 할까? 당신이 몰랐던 6가지
  조현욱(코메디닷컴 2013년6월 11일자에서 발췌)

 우리는 피곤할 때만 하품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산소가 부족해서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왜 하품을 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드물다. 10일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6가지 핵심 사실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하품은 뇌를 식히는 작용이며 사회적 감정 이입의 결과다.
첫째. 뇌를 식히는 기능을 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하품의 기능은 뇌를 식히는 데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을 크게 벌렸다 닫는 동작은 코 옆의 동굴인 부비동을 팽창 후 수축시킨다. 이렇게 해서 부비동은 풀무처럼 뇌에 공기를 불어넣어 온도를 낮춰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보도다. 이에 따르면 여름보다 겨울에 하품을 많이 한다. 여름에는 외부 공기가 따뜻해서 뇌를 냉각시키는 효과가 적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지루하면 더 많이 한다. 1986년 시행된 소규모 연구에 따르면 그렇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 색채의 패턴을 본 학생들이 30분짜리 록 비디오를 본 그룹에 비해 하품을 많이 했다.
둘째. 전염되는 이유는 감정 이입
 실제로 전염된다. 하품 비디오들을 본 사람 중 50퍼센트는 하품을 시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심지어 동물도 그렇다. 2004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 비비 사이에서도 하품은 전염된다. 개는 주인이 하품하는 소리만 들어도 하품을 시작할 수 있다. 심지어 생각하거나 읽기만 해도 전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매릴랜드 대학 심리학과의 보러트 프로빈 교수는 웃음도 전염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전염 이유는 감정이입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미국 수면의학회의 대변인인 마이클 데커 박사는 “하품은 심리적 현상이라기 보다 사회적 현상으로 파악되는 추세”라고 말한다. 우리가 피곤하지 않을 때 하품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셋째. 가까운 사이면 전염성이 더 크다
2012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절친한 친구끼리 전염성이 가장 높았다. 유전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하품을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데커 교수에 따르면 이는 감정이입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가족이나 절친 사이에서는 서로 간에 감정적 유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넷째. 질병의 신호일수도 있다
 무슨 심각한 질병의 주요 증상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하품은 잠이 심각하게 부족한 증상 이외의 것일 수도 있다. 미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이것이 미주신경에 영향을 미친 탓일 수 있다. 드문 경우지만 뇌의 이상도 과도한 하품으로 나타날 수 잇다.
다섯째. 태아도 하품을 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심지어 태아도 하품을 한다. 2012년 발표된 4차원 스캔 분석에 따르면 입만 벌리는 것과 하품을 하는 동작은 구별된다. 이는 뇌의 발달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또한 태아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중이라는 마커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라이브 사이언스가 보도했다.
여섯째. 평균 지속시간은 6초
 많은 매체가 하품의 지속시간은 약 6초라고 보도했다. 이 시간 동안 심장 박동이 크게 빨라진다. 2012년의 한 연구에선 하품을 하기 전과 하는 도중, 한 이후에 일어나는 많은 생리적 변화가 하품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히 숨을 깊이 쉴 때와는 다른 변화였다.


  11. 생명의 양식

  천국 보화의 발견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태복음 13:44)

 이 비유의 초점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기쁨입니다. 농부에겐 보화를 발견한 기쁨이 너무 컸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여겼던 많은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들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천국 보화를 발견할 때에 이 세상에서 잠시 있다 사라지는 헛된 것들에 대해서 더 이상 환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감춰진 천국 보화를 찾아 나섭시다.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점자새빛(가을호)에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4동 858-39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137-838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지참 서류: 자기소개서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 이용안내 =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장애인문화예술활동 지원)
 2012년 개관한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장애인의 예술적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자신감 회복을 도우며, 잔존능력 개발 및 직업능력 향상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써 통합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예술교육을 받기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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