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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여름호 묵자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4-05-12 12:11 조회5,431회 댓글0건

본문

~  = 점 자 새 빛 =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 0 1 3 년   ----------------------------------------- 여 름 호


등      록 ------------------------------------- 2011년 11월 3일


등 록 번 호 ------------------------------------- 서초 바00097호


제   54   권  ----------------------------------- 제2호 통권337호


발  행  일  ------------------------------------- 2013년 6월 15일


주      소  --------------------------- 서울 서초구 방배4동 858-39


전      화  --------------------------------------- 02-533-9820


발행겸인쇄인 ------------------------------------------- 안 요 한


인 쇄 처    -------------------------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1. 이호의 시 ------------------------------- 거울 앞에 서서(장동석)


2. 이호의 말씀 ---------------------------- 칭찬받는 삶(문원순 목사)


3.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이철환)


4. 여름을 이깁시다! -------------------- 여름철의 별미 무더위를 날리고
                                                입맛을 돋우는, 냉면(김수석)

5. 주제가 있는 글 -------- 저염식 운동의 핵심은 같이 먹고 나눠 먹는 것(이상일)


6. 짧은 글 긴 생각 ------------------------ 운동과 노동, 즐길줄 알아야
인생이 즐겁다.(유정복)

7. 건강하게 삽시다! ---------------------------- 손 발 저림 대부분은
말초신경병으로 인해 발생(홍윤호)

8. 인내(人匂:사람 사는 냄새) 이야기 --------------------- 젊은 사람은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이승철)

9. 이호의 인물 ------------------------------- 노래는 나의 힘, 나의 삶.
뇌90% 절단 청년, 박모세(이승건)

10. 생각의 여유 ----------------------------- 꿈을 향해 홈런!(김홍익)


11. 알아봅시다! ----------------------- 헬퍼스하이를 아시나요?(이소영)


12. 생명의 양식 ------------------- 노하기를 더디하고, 허물을 용서하자

 

= 이호의 시 =


거울앞에 서서
장동석


언제부터인가 낯익은 얼굴은 떠나가고
거울날 유리창에 번졌다 사라지는 입김처럼
뿌옇게 번지다 어두워집니다
당신이 떠나시면 그리울거라
마른 눈물로 애원하며 매달려 보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떠나갑니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애써 외면했음을 후회하고
당신이 내 앞에 있었을 때
좀 더 사랑하지 않았음을
끄덕여봅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고
모두 떠나버린 이제야
내가 당신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난 거울앞에 서서
떠나간 나를 하염없이 기다려봅니다.


= 이호의 말씀 =


칭찬받는 삶
문원순 목사(국민일보 2013년02월17일 ‘오늘의 설교‘ 발췌)

 마태복음 25장 14절에서 30절에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게 됐습니다. 그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건네주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긴 달란트를 종들이 얼마나 남겼는지 셈을 하게 됐습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갑절로 남겼습니다. 종들은 똑같이 “잘하였도다”라며 칭찬을 받았고, 주인은 그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주인 앞에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어 놓았습니다.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고 그 재능대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욕심을 갖고서 어떤 일을 맡은 뒤에 그 일이 엉망이 되고 좌초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재능을 주셨는지를 깨닫는 과정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재능을 알고 그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합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준 사람에게서는 많이 요구하시고 적게 준 사람에게는 적게 요구하십니다. 만약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한 달란트를 더 남겼더라면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똑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아예 장사를 포기하고 그냥 두었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비교하다가 의기소침해하며 자포자기한 듯 보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심심찮게 나타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처지를 비교하다가 의기소침하거나 반대로 교만해질 때도 있습니다. 전부 내가 가진 달란트와 타인이 가진 달란트에 대한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 주신 일과 직분에 있어서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똑같은 칭찬을 우리에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 즉 저마다 다양한 직분을 감당할 때 경계하며 피해야 할 암초들도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연약한 마음 같은 것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 직분을 주시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재능대로 두 가지, 다섯 가지 직분을 주셔서 많은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서로 시기·질투하여 싸움과 분쟁을 일으키는 건 마귀노릇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 달란트를 받은 우리는 남이 받은 달란트와 비교하며 시기하거나 질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게 맡겨진 달란트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는 “잘하였도다”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이철환(가슴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연탄길 발췌)

 민석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 근교의 유원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어두운 진입로를 들어설 무렵, 차도 한쪽에 검은 물체가 길게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도로에 흔히 방치된 거적 정도로 생각했지만, 예감이 심상치 않아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보니, 중년의 사내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고 있었다. 사내는 움직이진 못했지만 의식은 남아 있었다. 뺑소니 사고였다.
 “어서 차에 태워야겠어. 여보, 나 좀 도와주구려.”
 “빨리 경찰에 알리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의 아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러다 이 사람 죽을지도 몰라. 어서 빨리 나 좀 도와줘.”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민석은 사내를 차 뒷좌석에 태웠다.
 “이 차에 다 탈 수 없으니까 당신이 아이들 데리고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는데...택시나 버스도 없고 말야. 서둘러 다녀오리다. 우리도 언제 이런 일 당할지 모르지 않소?”
 민석은 병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캄캄한 거리 위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민석은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해면처럼 풀어져 있는 사내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보더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민석은 중심가의 큰 병원까지 다시 차를 몰았다. 사내는 응급실로 들어갔고, 민석은 병원 측에 사고 경위를 설명한 후 서둘러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몇 번을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웅성거리는 바람 소리뿐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민석은 불길한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 번이고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석이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사이렌 소리를 내며 119구조차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아수라장으로 변한 동네의 모습이 그를 더욱 불안케 했다. 소방차의 호스가 폭포처럼 사납게 물을 뿜으며 불길을 잡고 있었다. 민석은 순간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불이 난 곳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빌라였던 것이다. 악마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깨진 유리창은 연거푸 시꺼먼 연기를 뱉어냈다. 그리고 검은 연기 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있던 불길은 다른 곳으로 그 붉은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갔다. 바로 그때 가까운 곳에서 그의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보자 아내와 아이들은 울면서 그에게 달려왔다.
 “처제하고 김 서방은?”
 민석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처제네가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현이도 무사하고 김 서방도 다 무사해요.”
 몹시 놀랐는지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야?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한 시간쯤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당신이 늦어질 거 같아서 소현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래서 소현이가 김 서방하고 자는 애까지 안고 차를 가지고 우리들을 데리러 나왔구요.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이 지경이 된 거에요. 일층에서 가스가 폭발했대요.”
 “다른 사람들은 다 빠져나온 거야?”
 “잘은 모르겠는데 아까 여러 명이 구급차에 실려갔어요. 어떡해요, 여보...”
 그의 아내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엉엉 울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당시 빌라에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상자는 적었다. 그 사고로 가스가 폭발한 102호에 살고 있던 부부가 사망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민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강민석 씨 핸드폰 맞지요?”
 “네, 그런데요.”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제 선생님께서 목숨을 구해준 분이 제 남편이에요.”
 “아, 그러세요. 남편께서는 괜찮으신지요?”
 “오늘 새벽에 의식이 돌아왔어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살아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보답을 받은 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돼서 오후쯤 병원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며칠 뒤, 사내를 치고 달아났던 범인들이 밝혀졌다. 범인들은 사내를 치고 나서 차에서 내리기까지 했는데,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꿔 먹고 도망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고 당시에 의식이 남아 있던 사내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동차 번호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단서가 되어 범인들은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사내를 치고 달아난 범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민석이 사는 빌라에서 가스 폭발로 사망한 102호 부부였던 것이다. 뺑소니 사고가 난 곳은 민석의 집 쪽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진입로로, 민석의 집에서 차로 15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이들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위로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외면할 때, 어쩌면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의 몫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 해도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보면, 저런 우연이 정말 있을까 하고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생각보다 더 많은 우연이 있고, 생각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 그 중에는 단순한 우연도 있지만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섭리는 반딧불처럼 반짝거리며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인도하며 때로는 뾰족한 쇠사슬이 되어 악인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기도 한다.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 속으로 기적은 기어이 다가온다. 그리고 사악한 이들의 마음속으로 단죄의 화살은 날아가 박힌다. 기적이나 단죄의 화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관여하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 여름을 이깁시다! =


여름철의 별미 무더위를 날리고 입맛을 돋우는, 냉면
김수석(오가닉라이프 2012년 7월호에서 발췌)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7월.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탓에 몸도 마음도 늘어지기 마련이다. 따가운 햇볕에 땀을 많이 흘리면 쉽게 기력을 잃고 일에 대한 의욕도 사라진다. 이럴 때일수록 한 끼 식사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올 여름을 책임져줄 음식은 무엇일까. 물론, 삼계탕이나 추어탕과 같은 보양 음식이 여름의 인기 메뉴이기는 하나 그래도 여름철 별미, 부동의 1위는 냉면이다.
 냉면 사리의 주재료인 메밀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하여 소화기능을 돕는다. 특히 시원한 냉면의 육수는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주고, 양념으로 곁들이는 식초는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특히 살짝 넣는 겨자는 배탈을 예방하는 역할까지 하므로 냉면은 여름철 더위잡기에 그만이다.
 냉면은 고려시대부터 먹었던 걸로 추정되지만, 본격적으로 냉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조선 후기 기록들을 보면 냉면은 벼슬아치나 부호의 집에서 먹는 고급음식이었다. 특히 순조와 고종이 즐겨 먹던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그러한 냉면이 대중화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부터, 그나마도 주로 이북지역의 고유 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것이 6.25 이후 피난민들에 의해 전국 각지로 전파되어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냉면은 주로 평양냉면(물냉면)과 함흥냉면(비빔냉면)으로 분류되나 이번 호에서 여름철에 맛볼 수 있는 맛깔스러운 면 요리를 함께 소개한다.
평양냉면
 물냉면의 대명사로 불리는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원료로 약간의 밀과 감자녹말을 혼합해서 면을 만든다. 평안도 지방은 추운 날씨 탓에 벼나 밀보다 관리와 재배가 쉬운 메밀이 흔하기 때문이다. 육수는 본래 꿩 육수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꿩이 귀해져서 쇠고기 국물을 우려내서 동치기 국물과 혼합하여 육수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고명으로 편육, 계란, 무 등이 올라간다. 이러한 평양냉면은 본래 겨울철 음식이었다. 꿩과 동치미가 제맛을 내는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한겨울에 이한치한의 덕을 되새기며 평양냉면을 먹었을 것이다. 이러한 평양냉면은 메밀에 들어 있는 코린이라는 비타민과 수분을 보충해주는 육수가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우리나라에서 평양냉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중구 주교동의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우래옥’을 들 수 있다. 우래옥은 1등급 한우를 덩어리째 넣고 푹 끓여낸 육수에 소금과 간장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이곳이 냉면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끄는 비결 중의 하나는 ‘순면’에 있다. 순면은 100퍼센트 메밀을 사용한 것으로 면발의 까칠함과 향기가 매력적이다. 단 메뉴판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따로 주문해야 한다.
함흥냉면
 함흥냉면은 평양냉면과는 달리 맵고 자극적인 비빔냉면 위주다. 함흥냉면은 혹독한 추위가 지배하는 함경도 지방의 향토음식으로 메밀보단 지역 특산물인 감자나 고구마전분을 사용해 면을 만든다. 그래서 면발이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차지고 쫄깃하다. 치아로도 잘 끊어지지 않아 약간은 질기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그래서 함흥냉면집의 상차림에는 가위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이 있어 양념한 가자미나 홍어를 함께 넣어 먹는다. 매운 양념장으로 비빈 냉면에 따끈한 육수를 곁들이면 가슴속부터 화끈해져 온다.
 이러한 함흥냉면이 유명한 곳은 서울 중구청 인근의 오장동 냉면 골목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맛보는 함흥냉면 중에서도 별미는 회냉면이다. 회를  싫어한다면 삶은 달걀을 넣은 비빔냉면도 괜찮다. 그밖에 회와 고기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섞임냉면도 인기다.
소바
 소바는 일본식 메밀국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메밀국수를 소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메밀국수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총칭하는 말로 한국식 메밀국수와 일본식 메밀국수가 있다. 한국식 메밀국수는 앞서 설명한 냉면들이 대표적이며, 일본식 메밀국수인 소바는 면과 찬 국물이 따로 나오는 ‘판메밀’과 국물에 말아 먹는 ‘냉메밀’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즐겨 먹는 것은 판메밀이다.
 판메밀로 유명한 곳은 서울 종각에 있는 미진이 있다. 이곳은 사시사철 식사 시간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60년 전통의 소바 전문점이다. 일반 소바가게에 비해 꽤 다양한 음식을 내놓고 있지만,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판메밀. 멸치, 다시마, 가다랑어 등 십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장 국물에 파, 무즙, 김, 고추냉이를 식성에 맞게 넣은 다음 메밀 면을 푹 적셔 먹으면 된다. 주전자 통째로 제공되는 국물은 살짝 언 상태로 무한 리필이 가능하고, 메밀국수의 양도 꽤 넉넉한 편이라 성인 남성의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진주냉면
 진주냉면은 북쪽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남쪽에는 진주냉면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냉면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냉면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순메밀만을 사용하고, 고기육수 대신 시원한 해물 육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북식 냉면들과는 차이가 있다. 다양한 고명을 얹어 푸짐하게 담아서 나오는 것 역시 진주냉면의 매력이다.
밀면
 경상도 지역에선 잔치국수마냥 친근한 면이다. 말 그대로 메밀이 주원료가 아닌 밀을 주원료로 해서 만든 변형된 냉면의 종류다. 밀면에도 비빔밀면과 물밀면이 있다. 밀면 육수는 냉면과 거의 동일하게 사골,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사용한다. 본래 부산음식으로 알려진 밀면은 6.25전쟁 직후 부산에 정착한 실향민들이 만들어서 먹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밀면의 쫄깃한 맛에 매료된 이들은 메밀로 된 냉면은 먹기가 어려울 정도다.
막국수
 막국수는 냉면의 서민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냉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로 육수를 내야 해서 과거에는 냉면이 벼슬아치나 부호들이 먹는 고급음식이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고기 육수 대신 동치미 국물만을 사용해서 메밀면을 말아먹었다. 당연히 고명도 소박할 수밖에 없다.


= 주제가 있는 글 =


저염식운동의 핵심은 같이 먹고 나눠 먹는 것
이상일(먼저 사랑하는 이름 아버지 2013년 3월호 발췌)

 지난해 12월경 한 아가씨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즉사하고 말았다. 병원 근처 강남구 일대에 원룸이 많은데 이 아가씨가 혼자 살면서 인스턴트나 절인 음식 위주로 대충 먹거나 굶어 버릇하고, 난방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고염분 축적으로 인한 삼투압 쇼크 및 저체온, 저혈당 등 복합적인 쇼크로 사망에 이른 것이다.
 2005년부터 6년간 서울시 다산콜센터에서 복지 담당 관리로 상담전화를 받았는데, 일주일에 몇백 건 이상이 홀로 사는 사람에게서 걸려왔다. 상담 중에 “식사는 하셨어요? 뭐 드셨어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습관적으로 식사를 거르거나 절인 음식 위주로 식사하고 있었다. 혼자 살다 보니 번거롭게 차려 먹기도 귀찮고 음식 찌꺼기 남는 것도 싫어서 소금이나 설탕에 절였거나 염분 함량이 높은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때우고 사는 것이다.
 요즘 저염식이 좋다고 정부에서건 민간에서건 싱겁게 먹기 운동이 한창인데, 짜게 먹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저염식 운동의 핵심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저염식운동의 대두는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핵가족화를 넘어 일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독거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식생활에 균형이 깨지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홀로 죽어간 사람들의 주검을 몇 달 만에 발견했다는 흉흉한 소식들을 접하곤 하는데, 고인들이 염장 식습관을 오래 해왔다면 시신이 미이라 같은 형태로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 음식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식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수단이며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함께 식사하면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소통이 원활하면 통계적으로 건강하다.
 내원하는 환자 가운데 한 80대 어르신은 자녀들이 다 외국 나가 살아서 홀로 적적하게 지내고 계셨다. 가끔 오실 때마다 “경로당이라도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시라.”고 해도 “그런 델 뭐 하러 갑니까? 난 싫어요!”하시며 “어지러우니 영양제나 놔 달라.”고 하셨다. 한 번은 제대로 식사를 못하신 눈치기에 “식사나 같이 하시죠?”하고 병원 식당에 모시고 가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병원은 환자나 의사나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식사하고, 입맛 당기는 컬러푸드로 다양하게 준비한다. 처음엔 극구 사양하시더니 마지못해 식사를 마치고는 “꺼억, 자알 먹었다.”하시며 “이제야 기운이 솟는 것 같다.”고 하셨다. 백번 맞는 영양제보다 사람과 어울려 같이 먹는 식사 한 끼가 더 훌륭한 법이다.
 어떤 분들은 “젊은 사람들 번거롭게 식사를 꼭 같이 해야 합니까?라고 한다. 그러면 ”기운 있을 때 부디 식사라도 같이 하시면서 어울려 사세요. 기운 있으면 밥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밥도 해주시면서 같이 밥 먹자고 하세요. 그게 노후 보장책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가족이라도 자주 식사를 같이 못 하면 서먹해져서 서로 가족인가 싶고, 혼자 밥 먹어 버릇하면 간편한 것만 찾게 되니 과다하게 염분을 섭취하고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어울려 식사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평소 사람들과 함께 식사해 버릇하고, 일부러라도 식사모임을 만들어야 한다. 같이 먹고 나눠 먹으려면 아무래도 각기 다른 입맛을 다 맞출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간을 싱겁게 할 수 밖에 없다. 혼자서는 맨밥에 간장 하나 놓고도 먹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식사 할 때는 바로바로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서 먹고, 내 입맛만 생각지 않고 함께 먹는 이의 입맛을 생각해 약간 싱겁게 먹고, 남는 음식 걱정도 해소할 수 있다. 몇몇 선진국에서는 같이 모여 식사하는 일을 장려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자, 오늘은 김 씨네 집에 모이세요. 누구는 이거 해오고 누구는 저거 해오세요.“ 하는 식으로 같이 모여 즐겁게 식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저염식운동의 핵심은 ‘같이 먹고 나눠 먹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소금은 인체의 골격을 유지해주는 삼투압, 수분의 교차작용을 조정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소금의 교차작용은 인체대사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세포 안에 있는 포타슘과 세포 밖에 있는 소듐이 교차하면서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수분이나 인체 대사에 필요한 물질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왜 짜게 먹는가?를 놓고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단백질 대용으로 소금을 섭취하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 고기를 구해 먹기 쉽지 않다 보니 대신 소금을 섭취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금이 우리 식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과하거나 부족할 때 생기는 법이다. 소금을 과다하게 섭취했을 경우 세포 안에 있던 물질들이 쏙쏙 밖으로 빠져나와 세포가 쭈글쭈글해지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체액 순환 장애,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이고 특히 신경계의 중추신경 유지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즉, 소금이 신경계의 생각하고 정보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경계 쪽에 수분 함량이 제일 많은데 심장혈관계에서 펌프질을 통해 염분을 올려 보내면 소금의 농도 자체가 신경계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다. 진한 염분이 신경계로 전달되면 수분은 밖으로 빠져나가고 뇌가 쭈글쭈글해지면서 뇌 컨디션에 장애가 생겨 정신이 맑지 않고 짜증이 난다거나 집중이 잘 안 되는 증상을 유발한다. 소금이 적절히 섭취되어야 세포에 탄력이 생기고, 몸이 포동포동해지고, 피부도 탱탱해지고, 혈액 순환도 잘 되고, 사고력도 활발해진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먹어야 좋을까? 대체로 건강한 식단이라면 그 나라에서 나는 식재료, 신토불이가 제일 좋다고 한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은데, 이렇게 다 챙겨 먹으려면 경제적으로 만만찮게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먹기 좋을 만큼 간을 맞춰 먹되 혼자 먹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여기에 저염식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저염식 식사는 커뮤니케이션의 과학이다. 사람이 자꾸 고립되어 가면 자율성이 떨어져서 내가 내 맘대로 먹지 못하게 된다. 혼자 식당이라도 갈라치면 사람들 시선 신경쓰게 되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집에서 혼자 라면이나 끓여 먹다 보니 자율성이 결여된다는 뜻이다. 저염식은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구조 변화와 결부된 ‘관계의 문제’다.
 혹시 홀로 사는 분이 주변에 있으면 “식사 하셨습니까? 물어보고 함께 한 끼 식사라도 하자. 그것이 저염식운동이다. ”같이 밥이나 먹자!“는 인사는 참 좋은 것이다.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인간은 친근감을 느끼며, 무엇보다 우리 몸이 즐거워한다. 밥 때가 되어도 같이 먹자는 사람 하나 없는 것만큼 섭섭하고 서글픈 일은 없다. 예전에야 하도 가난해서 ‘식사하셨어요?’ 했지만, 요즘엔 혼자 식사한 건 아닌지 확인해보고 소통하는 의미로 묻는 인사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변 사람과 사랑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사랑스러운 관계는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만들어지고, 함께 식사하다 보면 굳이 저염식, 저염식 하지 않아도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다.

 

= 짧은 글 긴 생각 =


운동과 노동, 즐길 줄 알아야 인생이 즐겁다
유정복(스포츠 7030 2013.02월호)

 ‘운동과 노동의 차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변이 재밌다. “2시간 이상 하면 그때부터 운동이 아니고 노동이다.” “운동은 하면 할수록 즐겁고, 노동은 하면 할수록 피곤하다.” “운동은 몸을 벌고, 노동은 돈을 번다.” “시켜서 하면 노동이고, 스스로 하면 운동이다.”는 등 다양한 답변이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운동과 노동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축 늘어진 뱃살 빼려고 힘들게 몇 시간째 운동을 하는 여성을 보라. 표정에 즐거움은커녕 힘겨움만 역력하지 않은가. 그건 누가 봐도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 있다. 온몸이 쑤시고, 여기 저기 근육통과 타박상으로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다.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으면 참다못해 선수촌을 이탈하는 선수들이 나올까. 그들에게 있어 운동은 노동이다. 그 어떤 노동보다도 힘겨운 투쟁이다.
 반면에, 겨울인데도 비닐하우스에서 야채를 수확하는 농부를 보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하루 종일 일해도 피곤함이 없다. 새벽 일찍 어망에서 고기떼를 끌어올리는 어부를 보라. 밤을 지새운 고단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지만, 일자리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한 사람들에게 있어 노동은 강력한 베타 엔돌핀이다.
 운동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말한다. 보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운동은 신체에 대한 일종의 자극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에 일정시간 적정 강도로 규칙적, 반복적으로 자극을 주어 근력이나 심폐기능 등 신체능력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 역시 운동과 마찬가지로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그로 인하여 노폐물이 발생하는 생리학적 메카니즘은 동일하다. 다만 대개의 운동이 전신을 움직이는데 반해, 노동은 국소적인 동작이 많다. 즉, 운동은 관절을 골고루 사용하지만 노동은 몇 가지 관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무리가 간다. 또한 운동은 적정 강도로 진행하다가 일정시간 휴식을 취하는 등 조절이 가능하지만, 노동은 휴식 없이 장시간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노동은 피로물질의 회복이 느리고 누적된다.
 이제 답이 나왔다. 노동을 운동으로 바꿔보자. 절대 무리하지 말고 중간 주간 휴식을 취하면서 몸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설거지를 할 때도 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자세를 취하고, 걸레질을 할 때도 팔을 교대로 사용하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삽질을 할 때도 자세를 바꿔가며 일을 하고, 망치를 두드릴 때도 팔을 교대로 사용한다면 신체의 불균형과 관절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작업을 하다가, 스트레칭으로 몸을 유연하게 해 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기분 좋게 노동을 하면 일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정신건강에도 좋다. 헬스장에 가서 폼 나게 덤벨을 든다고 다 운동이 아니다. 집안에서 생활도구를 활용하여 운동할 수도 있고, 논밭에서 일을 할 때도 ‘수확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적절하게 활동량을 조절하면 운동효과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 어차피해야 하는 노동, 즐기면서 하면 그게 ‘생활 속 운동’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운동하자. 업무도 즐겁게 하자. 운동을 즐길 줄 알아야 인생이 즐겁다.


= 건강하게 삽시다! =


손 발 저림 대부분은 말초신경병으로 인해 발생
홍윤호

 손 발 저림에 대한 일반적인 의학 상식으로, 의학에서 '저림'은 '이상감각'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 또한 넓은 의미의 '통증'으로도 볼 수 있다. 원인은 중추 및 말초신경계에 걸쳐 매우 다양하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에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적절히 조절되지 않으면 통증이 더욱 악화되고, 만성화되면 원인 질환을 밝히더라도 대개의 경우 치료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손 발 저림의 원인으로 대표적인 질환을 들면 말초신경질환, 척추신경근질환, 척수질환, 뇌졸중과 말초혈액순환 장애 등이 있다. 외상이나 신경 손상 후에 발생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이라는 질환도 있다(앞서 상담 글을 올린 환자 분의 예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 질환은 주로 손상 부위에 국소적인 통증과 함께 체온의 변화, 홍조, 부종, 땀 분비의 변화 등 자율신경 및 혈관 장애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해당 부위 골밀도의 저하, 근육의 위축 등이 동반된다.
 다시, 손 발 저림의 원인 질환으로 돌아가서 각 질환 별로 나타나는 손 발 저림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는 손 발 저림의 원인 규명에 매우 중요하다. 우선, 손·발이 저리면 "말초혈액순환장애 때문이다." 혹은 "중풍의 초기 증상이다." 라고 지레 짐작하고 미리 겁부터 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의학 상식으로서 혈액순환장애 혹은 중풍에 의한 손 발 저림은 매우 드물다. 먼저, 뇌졸중에서 나타나는 손 발 저림은 갑자기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한쪽에서만 증상이 발생하고 대개 저린 증상이 반신에 걸쳐 나타난다. 일과성 뇌허혈의 경우 증상이 있다가 없어진다. 입술 주위가 저리거나 언어장애가 동반되기도 하고, 반신 마비를 동반할 수도 있다. 말초혈액순환장애에서 나타나는 손 발 저림은 '저림'이라기보다는 '시린' 통증인 경우가 더 흔하다. 손가락 발가락 끝이 차고 찬물에 손이나 발을 넣으면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희게 변하며 손·발의 땀 분비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팔목과 발목 부위의 맥박이 약해진다. 동맥경화, 혈관염, 레이노드병, 버거스씨병 등이 주요 원인이며 이들은 실제로는 매우 드물게 손 발 저림을 유발한다.
 대부분의 손 발 저림은 말초신경병에 의해 발생한다. 침범되는 신경의 부위에 따라 크게 단발성 말초신경병과 다발성 말초신경병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가장 흔한 단발성 말초신경병은 손목굴증후군 혹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손목부위 손목인대 사이에서 정중신경의 압박에 의해 손 저림이 발생한다. 손바닥, 첫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끝의 저린 증상이 특징적이다. 서서히 발생하며, 손잡이를 잡거나 운전 시, 그리고 잘 때 주로 저린 증상이 심해진다.
 중년여성들이 흔히 경험하며 심한 경우 엄지두덩근의 위축이 동반된다. 과도한 손목 운동, 외상, 류마티스성 및 골관절염, 건염, 갑상선기능 저하증, 유전분증, 임산부, 당뇨병 등이 대표적인 원인들이다. 손 발 저림이 양측 대칭성으로 동시 다발로 시작된다면 다발성 말초신경병을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 손, 발 동시에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주로 발부터 시작한다. 당뇨병, 알코올, 영양결핍, 면역질환, 혈관염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사지 말단부의 감각 저하 및 운동마비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하부 경추 및 요추·천추 신경근의 이상도 손 발 저림을 유발할 수 있다.
 뒷목이나 아래 허리 부위로부터 손, 발로 뻗치는 통증이 특징적이며, 근력 약화나 근육의 위축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이나 퇴행성 척추관절염 등이 대표적인 원인질환이며, 그 밖에 류마티스 관절염, 골다공증, 외상, 종양 등 척추변형을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척수병에 의한 손 발 저림은 대부분 양측성으로 나타나며, 운동 및 감각 마비, 배뇨 및 배변장애가 흔히 동반된다. 운동 및 감각이상은 가슴이나, 배를 포함하는 비교적 광범위한 부위에 걸쳐 발생한다. 척수염이나 다발성경화증, 척수경색, 외상, 종양 등에 의해 유발된다.
 손 발 저림의 원인진단을 위해서는 전문의의 진찰이 가장 중요하고, 신경전도검사 및 근전도검사로 대부분의 말초신경병을 확진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혈액이나 소변검사, 방사선검사(X선 검사, 초음파, MRI)등이 원인 질환 규명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손 발 저림의 원인이 밝혀지면 이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치료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잘못된 의학상식이나 민간요법에 기대어 막연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진단 및 치료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 인내(人匂:사람 사는 냄새) 이야기 =


젊은 사람은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이승철(서울톡톡 2013년 01월 29일 시민리포터 ‘名’ 칼럼 발췌)


"어르신!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너무 힘들어 보이는구먼, 그냥 앉아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지하철 안에서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자리 양보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젊은이의 어깨를 붙잡아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자리를 양보하고 양보 받는 사람이 너무 뜻밖이었다. 자리를 양보한 사람은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었고, 자리를 양보 받은 사람은 30세 전후로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퇴근시간 무렵 지하철 4호선에서 있었던 일이다.
 퇴근시간 지하철 안은 매우 붐볐다. 충무로역에서 당고개행 열차에 젊은이 한 사람이 승차했다. 젊은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좌석 앞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고 섰다. 그런데 그렇게 서있던 젊은이가 한 정거장도 가기 전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손잡이에 매달리듯 몹시 지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마침 그 젊은이 바로 앞에 앉아 있다가 그 모습을 바라본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게 자리에 앉도록 양보하는 과정에서 작은 승강이가 벌어진 것이다. 노인에게서 자리를 양보 받아 몹시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젊은이는 너무 피곤했는지 앉자마자 곧 잠이 들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 중에 젊은 사람이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우리 전통 경로효친 사상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문화다. 그런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노인들의 억지와 무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더러 있다. 언젠가는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자리에 않는 것을 보았다. 또 지난 가을에는 피로의 기색이 전혀 없는 건장한 노인이 일반석에 앉아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노인이 앞에 서있는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노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의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걷기가 힘들어 비틀거리며 다가온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외면하거나 딴청을 부리는 모습도 가끔씩 눈에 띈다. 앉을 자리를 양보하는 우리 전통 미풍양속이 잘 못 이해되거나 퇴색해가는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그런데 며칠 전 지하철 4호선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노인의 모습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짜 멋진 노인이었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이고 계승해야할 미풍양속인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나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리양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드리는 노인이나,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 그리고 건강하고 젊은 청년이 몸이 불편한 노인을 외면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염치없고 미숙한 행동들이다.
 자리 양보와 같은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의 계승발전은 법률로 규제하거나 강제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 임산부나 몸이 불편하고 약한 장애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양보하는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인사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사람들이라고해서 모두 항상 힘이 넘치고 건강하기만 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도 때론 쓰러질 듯 피곤하고 힘든 때가 왜 없겠는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상 젊은이들에게 양보받기만 하고, 더구나 강요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행동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겸손하고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를 해야 젊은이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4호선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노인처럼 말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고 공경하고 사랑하는 경로효친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지하철에서 작은 매너부터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 이호의 인물 =


노래는 나의 힘, 나의 삶. 뇌90% 절단 청년, 박모세
이승건(동아일보 2013년 01월 28일 기사 발췌)

 아기를 몰래 보는 게 아니었다. 회복실을 빠져나온 엄마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가족들이 만류하던 일이었다. 어차피 죽을 아이, 차라리 안 보는 게 마음이 덜 아플 거라는 이유에서다. 머리로는 수긍을 했지만 마음이 가만히 있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아픈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커튼 사이로 뭔가를 잔뜩 머리에 씌워 놓은 신생아가 보였다. 이름표를 확인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아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울면서 기도했다. ‘아기를 꼭 살게 해주세요. 살아서 눈 한 번만 마주치게 해 주세요.’ 안 봤다면 모를까. 짧은 시간 아기는 이미 엄마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뇌가 밖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낳아도 살 수 없어요.”
1992년 봄. 임신 5개월이던 조영애 씨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들었다.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 상황에서 출산한 산모는 없습니다. 유산을 하시죠.”
태아는 뇌류였다. 뒤쪽 머리뼈가 없어 그 틈으로 뇌가 흘러 나왔다. 2년 전 큰딸을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출산했던 조 씨였다. 순간 아기를 임신하자마자 열병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약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일주일을 견뎠다. 그게 문제가 됐던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마 뒤 다시 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내게 준 생명 미리 해하지는 말자.’ 유산을 놓고 방황하던 엄마는 마음을 굳혔다. 그해 8월 4일 아기는 세상 빛을 봤다. 머리 바깥으로 머리만 한 뇌가 나와 있었다.
“수술을 해도 죽고 안 해도 죽을 겁니다.”
의사의 말은 이번에도 야속하게 들렸다. 제왕절개 수술 후 회복실에 있는 엄마를 대신해 아빠 박웅기 씨가 물었다.
“정말 1%의 가능성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의사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합니까.”
아빠는 의료진과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수술을 해도 죽는다고 했지만 그대로 아기를 보낼 수는 없었다. 사흘 뒤 아기는 수술을 받았다. 대뇌의 70퍼센트, 소뇌의 90퍼센트를 절단했다. 의사는 말했다. “뇌의 대부분을 잘라냈기 때문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겁니다. 장애가 너무 심해 살 수 없을 겁니다.”
 태어나자마자 대수술을 받은 아기는 머리를 실밥으로 잔뜩 봉한 채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엄마가 가족 몰래 아기와 처음 만난 건 그 수술 다음 날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박모세. 가족들이 다니던 용인 부성성결교회의 목사님이 지어줬다. 홍해를 갈랐다는 그 ‘모세의 기적’이 아기에게 일어나길 바라서였다.
 아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친정에 가 있던 엄마는 한동안 병원에 가지 못했다. 죽었다는 소식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출산 후 한 달이 좀 지났을 때 병원으로 오라는 소식을 들었다. 낳았을 때 3.06키로그램이었던 아기의 몸무게는 2.2키로그램으로 줄어 있었다. 울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살아 있었다. 엄마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다.
 생후 18개월쯤 모세는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더니 숨을 쉬지 않았다. 뇌수가 흐르지 않아서였다. 다시 큰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부탁해 모세와 함께 중환자실에 있던 엄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머리 두 곳에 큰 관을 꽂고 입에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했어요. 몸에도 각종 튜브와 집게가 주렁주렁 매달렸죠. 어디 한 군데 만질 곳이 없었어요.”
 수술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두 차례 더 뇌수술을 받았다. 뒤틀린 다리의 교정 수술도 두 차례 받았다. 다리 수술 때 성장판을 건드린 탓에 모세는 키도 잘 크지 않았다. 특히 몸의 오른쪽은 눈도, 귀도, 손도, 다리도 장애가 심했다. 생명을 유지한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세에게 두 번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모세가 다섯 살 때였다. 엄마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갑자기 말문이 터졌어요. 이전까지 ‘엄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던 아이가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는 거예요. 듣고 기억해 뒀던 모든 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말을 시작하자 노래가 다가왔다. 모세는 일곱 살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만 해도 대견하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장애아 학부모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세를 당시 김원길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가 보고 여자프로농구 경기에서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초청을 했다. 모세의 ‘애국가 데뷔 무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많은 관중 앞에서 애국가를 열창한 모세에게 감동을 받은 김 총재는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벗어 줬다.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후 노래는 모세의 전부가 됐다. 2007년부터는 수원시 장애인합창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복지단체 사랑나눔위캔에서 주최한 ‘셰어 러브’ 캠프에 참가했다. 경기 용인시 송담대에서 장애·비장애 학생이 함께 생활하며 국내 정상급 예술인들의 레슨을 받는 행사였다. 사랑나눔위캔은 나경원 스페셜올림픽조직위원장이 만든 단체. 캠프 발표회 때 모세를 눈여겨봤던 나 위원장은 캠프가 끝난 뒤 경북 경산시에서 열린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엄마는 “모세가 노래할 수 있도록 그런 큰 자리를 마련해 준 게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사실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래뿐이다. 일상생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하기 힘들다. 중증 장애인을 아들로 둔 엄마는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세가 살고 있는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에서 경기 광주시에 있는 학교까지는 약 35키로미터. 그나마 1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 10키로미터 정도 거리가 줄었다. 매일 아침 차를 몰고 모세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엄마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30분까지 학교에서 기다린다. 이후에도 모세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항상 그 옆을 지킨다. 그런 엄마에게 요즘 걱정거리 하나가 생겼다. 다음 달 고교 과정을 졸업하는 아들의 진로 때문이다. 모세는 지난해 한 대학 실용음악과 수시 모집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대학 진학을 이유로 장애인복지단체 ‘두드림’에서 지원했던 성악 개인교습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다는 건 장애학생과 그 부모로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어려움이다.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의 한 교회. 모세는 수원시립합창단 백정태 씨의 지도로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저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세가 밝게 인사를 했다. 아직 어린아이처럼 목소리가 맑다. 학교에서도 인사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한 모세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인사는 했지만 질문이 이어지자 선뜻 대답을 못한다. 아는 얘기, 들었던 얘기는 기억을 하고 대답을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 반응이 늦다. 눈도 오른쪽은 거의 보이지 않고 왼쪽도 희미하게 사물을 짐작할 뿐이다. 모세의 머리에는 지금도 관이 박혀 있다. 뇌수를 흐르게 하기 위해서다. 거기에 연결된 튜브는 왼쪽 귀 뒤편을 통해 목을 지나고, 위까지 내려간다. 교회 안은 추웠다. 점퍼를 벗고 노래 연습을 하는 모세에게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안 추워요. 노래를 하면 행복하니까요.”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박모세는 강원 용평돔을 가득 채운 4000여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국가를 부른다. 평소 목소리와 달리 우렁찬 음성으로 노래를 하던 모세가 잠시 쉬는 틈을 타 말했다.
“엄마가 그러는데요, 엄마는 저와 함께 있을 때 제일 행복하시대요. 맞죠, 엄마?”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세는 다시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살아만 달라고, 살아서 엄마 옆에만 있게 해 달라고 했는데 이런 기쁨까지 주네요.” 노래하는 아들을 지켜보던 엄마의 뺨에 복숭앗빛이 번졌다.

 

= 생각의 여유 =


꿈을 향해 홈런!
김홍익(월간 ‘좋은생각’ 1월호)


 나는 재능 많은 야구 소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에 매달렸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여러 대회에서 유망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회가 끝나면 학교 앞 현수막에 “장하다! OO중 야구부 대회 우승!”이라는 글과 우수 선수상을 받은 선배와 친구,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혔다.
 야구에 한창 재미를 느낄 즈음, 집안 사정이 기울었다. 가계부를 살피던 아버지는 몇십만원씩 비는 것을 알아채고 어머니를 추궁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살림살이를 던지며 싸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술을 마셨고, 그 화살은 나와 동생에게 날아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음 날 야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의 싸움으로 집 안은 난장판이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누구세요?” 걸쭉한 목소리의 중년 사내가 말했다. “문 좀 열어 브러야? 응?” 그날부터 시작된 빚쟁이들과의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졌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가게를 하며 물건을 대기 위해 현금서비스와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아버지와 싸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사채에 손을 댔다.
 급기야 어머니는 내가 출전하는 전국 대회 결승 전날에 잠적해 버렸다. 나는 그 날의 홈런을 부모님이 아닌 빚쟁이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진학과 야구 자금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막는데 써야 했다.
 다행히 야구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뽑힌 나는 꿈에 한 발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이 더 어려워져 야구를 포기해야 했고, 야구공과 배트 대신 연필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야구를 내려놓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연습장으로 달려가 공을 던졌다. 그 간절함이 전해졌을까. 대학에 들어가 치른 선수 선발 시험에서 합격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야구 선수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연습한 탓일까? 입단한 지 한 달 만에 어깨에 탈이 나고 말았다. 공 속도는 점점 떨어졌고, 변화구는 무뎌져 연습 경기에서도 홈런과 장타를 밥먹듯 맞았다. 부상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해 경기에 나가 보지도 못한 채 유니폼을 벗을 위기에 처했다. 나는 고민 끝에 포수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1군에서는 어깨가 강하고 공수를 겸비한 포수를 필요로 했다. 결국 나는 한 경기에서 도루를 아홉 개나 허용한 끝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 뒤 힘든 시간을 겪는데 문득 캐스터와 해설 위원이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맞아, 야구는 선수만 하는 게 아니지! 비록 경기장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캐스터나 해설 위원으로 야구와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
 지금 나는 군대에 들어와 방송을 담당하는 병사로 실무를 익히는 중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열심히 공부해 언젠가 스포츠 방송에서 “쭉 날아가는 공! 홈런입니다.!” 하고 외칠 것이다.
 야구에는 에이스가 있다. 그러나 에이스도 늘 잘 던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에이스라 불리는 이유는 홈런을 맞아도 실책해도 꿋꿋이 자신만의 공을 던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찾아와도 꿈을 잃지 않고 견디면 나도 에이스가 될 수 있을까? 그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알아봅시다! =


헬퍼스하이를 아시나요?
이소영(사랑의 열매 2013‘02월호)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러너스하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일정 시간 이상을 달렸을 때 얻는 쾌감을 일컫는 이 용어는 나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봉사를 하거나 기부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감성이 생성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나눔’과 ‘건강’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조명한다.
 지난 2003년 미국 미시건대학교 연구팀은 70세 이상 423쌍의 장수 부부들을 대상으로 5년 동안 그들이 장수하는 이유를 관찰했다. 그 결과 작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정기적으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방문하면서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헬퍼스하이’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남을 돕고 난 뒤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생기는 심리적 포만감을 뜻한다. 하지만 헬퍼스하이가 단순히 심리 상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헬퍼스하이를 경험한 사람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엔돌핀 분비가 정상치의 3배 까지 올라갈 뿐 아니라 체내 혈압 및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친밀감을 높이고 유대를 강화시키는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가 증가해 불면증과 만성 통증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헬퍼스하이는 ‘장수’와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조사가 진행된 5년 동안 134명이 사망했는데, 생존자 중에서 여성의 72퍼센트, 남성의 75퍼센트가 조사 전년도에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도와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주일에 8시간 이상 남을 돕는 자원봉사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95퍼센트가 헬퍼스하이를 경험했다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결과가 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1988년 하버드 의과대학교에서도 진행됐다. 700여 명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눈 연구진은 가 그룹에는 대가 없이 남을 돕는 봉사활동을, 다른 나 그룹에는 돈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 활동을 1개월 동안 지속하게 한 뒤 그들의 변화를 관찰했다. 변화는 대가 없이 남을 돕는 봉사활동 그룹에서만 일어났다. 가 그룹 학생들만이 타액 속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항체의 수치가 월등히 높아진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학교가 1996년에 진행한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자. 연구팀은 실험 전 학생들의 면역항체 수치를 조사하여 기록한 뒤,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여주고 면역항체 수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모든 학생이 면역항체 수치가 실험 전보다 일제히 높게 나타났다. 이로써 직접 선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선행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봉사와 사랑을 베풀며 일생을 보낸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붙여 ‘마더 테레사 효과’, 혹은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친 슈바이처 박사의 이름을 붙여 ‘슈바이처 효과’라고도 불린다.
 이밖에도 봉사와 기부의 의학적 효과를 입증해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영국 비비씨 방송국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2009행복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행복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비비씨 방송국이 특히 주목한 곳은 영국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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