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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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새빛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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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년 11월 3일
등록 번호: 서초 바00097
제55권 3호 통권341호
발행일: 2014년 12월 30일
주소: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97-1
전화: 02-533-9820
발행겸 인쇄인: 안요한
인쇄처: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1. 이호의 말씀: 알고 보니 괜찮은 놈? (이응도)
2.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천사는 결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도티 월터즈)
3. 주제가 있는 글: 그 놈의 사춘기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강금주)
4. 건강 코너: 성인 기준 하루 12~13g의 소금 필요
5. 어른들을 위한 동화: 세 나무 이야기
6.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둘: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릴리 월터즈)
7. 생명의 말씀: 마음을 여는 대화 (욥33:1-12)
1. 이호의 말씀
알고 보니 괜찮은 놈?
이응도
저는 제가 고등학생 때 체육을 담당하셨던 김태환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사회학을 전공하셨지만 체육을 좋아하셔서 체육과목을 가르치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별명을 ‘우대’라고 붙일 만큼 가슴과 팔 근육이 너무 발달해서 항상 팔을 좌우로 벌리고 걸어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고 2때 저희 반 교실은 학교 건물 중앙 조례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저희 반은 방과 후 청소 시간이 되면 7-8명 정도가 나가서 조례대를 쓸고 정리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저와 친구들이 청소를 하러 나가서 장난을 쳤습니다. 한참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놀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통수를 ‘딱!’하고 때렸습니다. “누구얏!”하고 돌아보니 험악한 표정의 ‘우대’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놈의 자식이”하시더니 막무가내로 때리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발생한 일이라 당황하기도 했고, 뭐 그런 일로 이렇게 사람을 때리나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팔로 선생님의 구타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를 외치면서 뒷걸음을 쳤습니다. 선생님은 조례대를 돌면서 저를 때리려고 하셨고, 저는 계속 피하고 도망쳤습니다. 학생들이 점점 모이고 선생님은 점점 지치셨습니다. “너 이름이 뭐야? 2학년 3반, 이응도? 너 오늘 수업 마치고 학생주임실로 와!”
여러분, 혹시 학교 다니시면서 학생주임실로 끌려가보셨습니까? 거의 죽어서 나오는 곳입니다. 도망갈 곳도 없고, 또 여러 선생님이 계셔서 막을 수도 없고. ‘아, 이제 죽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몇 대 맞을 걸’하는 생각도 들고, 또 ‘선생님이라는 분이 학생을 그 정도의 일로 그렇게 때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잇, 학교를 그만 둘까’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날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방과 후,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학생 주임실로 갔습니다. 학생부 선생님이 여러 분 계실 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김태환 선생님 한 분만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의자를 권하셨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습니다.
“이응도, 니 아까 많이 아팠제? 괜찮나?” 뜻밖의 말씀이셨습니다.
“괜찮습니더. 별로 안 맞았십니더.”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이노무 자슥.”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그 담임선생님한테 오늘 니를 반쯤 죽여 놓겠다고 허락을 받으러 갔다 아이가. 니 담임이 이차환 선생님이제?” “예.” “그런데 니 알고 보니 착한 놈이라 카데. 생활기록부 보니까 말썽 피운 적도 없고, 성적도 좋고. 니 아부지가 목사님이고 니는 기독교학생회 회장이라매? 나도 요새 교회 댕긴다. 내가 별거 아닌 일에 너무 심하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 선생님은 제 어깨를 툭툭 쳐 주셨습니다.
아마도 저희 학교 역사에 학생주임실로 끌려가서 선생님과 웃으면서 나온 학생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김태환 선생님은 좀 급한 성격을 가진 분이셨지만 또 참 좋은 장점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안 좋았을 겁니다. 감히 조례대에서 껑충껑충 장난을 치고 있었으니 정말 문제가 많은 학생이라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큰 벌과 책망을 하시기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제가 누구인지 알아보셨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과 평가를 들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저의 담임선생님의 평가와 저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저를 다시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통해서 저를 보신 것이 아니라, 저를 통해서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셨습니다. 그랬더니 화를 낼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많이 격려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문제를 통해서 한 사람을 해석하신 일은 없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의 모든 행동, 삶의 모습이 다 문제로 보이지 않던가요? 사람이나 사물, 현상이나 관계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하지만 사람이 가진 문제는 그 사람의 삶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한 때 어떤 사람이 만드는 문제 또한 그 때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모든 문제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오늘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니 사람들의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를 통해서 사람을 보면 그는 문제적 사람이 되어 삶의 전부가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가치와 존엄이 전혀 없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 많은 사람도 그 어느 누구에게는 좋은 친구, 사랑받는 아들, 존경받는 부모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문제로 얼룩진 것처럼 보여도 어느 누구에게는 참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를 통해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를 통해서 문제를 다시 해석하면 그 모든 문제는 다소 견딜 만 하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의 좋은 점을 통해서 연약한 점을 이해해주셨던, 저의 성장에 큰 거름이 되어주신 은사님을 기억합니다. 저도 그런 시선을 가지고 싶습니다.
2.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천사는 결코 인사를 하지 않는다
도티 월터즈
할머니가 내게 천사에 대한 얘길 해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천사들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음 문을 두드리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천사들이 두 날개 사이에 우편 행말을 짊어지고 머리엔 멋진 우편 배달부 모자를 쓰고 문앞에 서 있는 것을 그려보곤 했다. 천사들이 배달하는 편지에는 <천국 속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들었다.
할머니는 설명하셨다.
“천사가 너의 문을 열기를 기다려선 안 된다. 너의 마음 문에는 손잡이가 안쪽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 바깥쪽엔 손잡이가 없지. 네가 있는 쪽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넌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걸 잘 듣고 있다가 네 쪽에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야 한다.”
나는 할머니의 얘기가 재미있어서 자꾸만 묻곤 했다.
“그럼 그 다음에 천사가 하는 일이 뭐예요?”
“천사는 결코 인사를 하지 않아. 네가 나가서 그 메시지를 받아야 하지. 그런 다음 천사는 네게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네 책임이다.”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나는 곧잘 질문을 받는다. 대학 졸업장도 없이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두 아이까지 낡은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어떻게 그토록 국제적인 사업체를 여러 개나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첫째, 나는 인터뷰하는 기자에게 내 자신이 일주일에 적어도 여섯 권의 책을 읽는다고 말해 준다. 글을 깨치면서부터 나는 줄곧 그렇게 해 왔다. 책들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을 활짝 연다고 나는 설명한다. 천사가 건네주는 메시지는 새로운 사업 구상, 내가 써야 할 책들, 내 개인적인 삶과 사업상의 문제들을 훌륭하게 해결하는 법 등에 관한 것이다. 마치 아이디어로 가득한 강물이 흘러오듯 그 메시지들이 쉼없이 내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하지만 천사의 방문이 중단된 적이 한번 있었다. 내 딸 릴리가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의 일이었다. 릴리는 그때 우리집 말들에게 먹일 건초더미를 옮기기 위해 아버지가 세낸 지게차에 재미삼아 올라타고 있었다. 아버지가 렌트 사업소로 지게차를 되돌려 주려고 가는데 릴리와 이웃집 아이 두 명이 태워달라고 애원을 했던 것이다.
작은 언덕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기어 고장이 발생했다. 릴리의 아버지는 재빨리 리프트를 땅바닥에 박아 지게차를 정지시키려고 시도했다. 그 바람에 지게차가 그만 도로 옆으로 뒤집혀 버렸다. 이 사고로 이웃집 딸아이는 팔이 부러지고, 릴리의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떨어졌다. 릴리는 지게차 밑에 깔렸다, 차의 앞부분이 릴리의 왼손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그리고 휘발유가 릴리의 허벅지로 쏟아졌다. 휘발유는 불을 붙이지 않아도 화상을 입힌다. 이웃집 사내아이는 다행히 다치지 않아 얼른 지나가는 차들을 세웠다.
우리는 황급히 릴리를 태우고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여러 차례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수술할 때마다 조금씩 손을 절단해야만 했다. 의사들은 사람의 팔다리는 끊어지면 때로는 다시 이어붙일 수 있지만 완전히 으스러졌을 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릴리는 그때 막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직후였다. 또한 난 작가이기 때문에 릴리에게 이듬해에는 타자치는 법을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종종 혼자 차를 몰고 나가서 핸들에 고개를 파묻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을 집중력조차 없었다. 어떤 천사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내 가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 끔찍한 사고로 인해 릴리가 다시는 인생에서 하지 못하게 될 일들이 계속 내 생각을 괴롭혔다.
여덟 번째 절단 수술을 받기 위해 릴리를 병원으로 데려갔을 때 내 영혼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난 줄곧 생각했다.
“릴리는 결코 타자를 칠 수 없을 거야! 결코 타자를 칠 수 없을 거야. 결코 칠 수 없을 거야.”
릴리의 소지품 가방을 병실에 내려놨을 때였다. 갑자기 옆 침상에 있던 십대 소녀가 거의 명령하는 듯 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당장 저 복도 끝 왼쪽 세 번째 병실로 가세요! 거기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실려 온 남자애가 있을 거예요. 그리로 가서 그 아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오세요. 어서요!”
소녀의 목소리는 마치 전쟁터에 나선 최고 사령관 같았다. 우린 그녀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말한 병실로 가 사고를 당한 소년을 격려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릴리의 병실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나는 이 평범치 않은 소녀가 몸이 약간 기울어져 있음을 눈치챘다.
내가 물었다.
“넌 누구니?”
소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전 토니 다니엘이에요. 장애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이번에 의사 선생님께서 내 키를 2센티미터나 키워 주기로 했어요. 전 소아마비이거든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요.”
그녀는 슈워츠코프 장군(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현지 주둔 미군사령관이자 다국적군 총사령관)과 같은 카리스마와 힘을 갖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넌 장애인이 아니야?”
소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요. 아주머니 말이 옳아요. 우리 학교에선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장애인이 아니라고 가르쳤어요. 다른 아이들에게 타자치는 법을 가르치는 내 학교 친구를 보면 누구라도 그 애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팔과 다리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애는 입에 막대기를 꽂고서 우리에게 타자치는 법을 가르치죠.”
쾅, 쾅! 갑자기 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천사가 내 마음 문 앞에 와서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난 당장 병원 복도로 달려 나가 공중전화를 찾았다. IBM 회사에 전화를 건 나는 회사 책임자를 바꿔 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내 어린 딸이 최근에 왼손을 거의 잃었는데 혹시 한 손으로 치는 타자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물론이죠.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른손만을 위한 타자기, 왼손만을 위한 타자기, 발을 사용해 페달을 밟아서 치는 타자기, 입으로 막대기를 물고 치는 타자기도 있습니다. 타자기는 무료입니다.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드리어 릴리가 다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나는 한 손으로 치는 타자기를 입수했다. 릴리의 손과 판에는 아직 큰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난 학교 교장에게 릴리가 아직 어린긴 하지만 체육 수업 대신에 타자 수업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교장은 그런 전례가 없고, 또 타자 교사가 이중으로 수고를 해야 하긴 하지만 직접 가서 부탁을 해보라고 말했다.
타자반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방 전체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벤자민 프랭클린, 랄프 왈도 에머슨, 윈스턴 처칠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한 말이 벽마다 걸려 있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교사는 자기가 한 손으로 타자 치는 법을 가르쳐 본 적이 없긴 하지만 매일 점심시간에 릴리를 지도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덕분에 저 역시 한 손으로 타자치는 법을 함께 배우게 되겠군요.”
오래지 않아 릴리는 영어 과목 숙제를 모두 타자로 칠 수 있게 되었다. 그해에 릴리의 영어 교사는 소아마비 환자였다. 오른쪽 팔이 무기력하게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릴리를 꾸짖었다.
“네 엄마가 널 아기 취급하는구나, 릴리. 넌 성한 오른손을 갖고 있다. 그러니 숙제는 엄마를 시키지 말고 네게 직접 해야지.”
릴리는 웃으면서 영어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전 한 손만으로 1분에 50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어요. 전 IBM에서 만든 한 손 타자기를 갖고 있거든요.”
영어 교사가 갑자기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타자를 치는 것이 언제가 내 소망이었단다.”
릴리가 말했다.
“그럼 점심시간에 타자반으로 오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첫 번째 점심시간 레슨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온 릴리가 소리쳤다.
“엄마, 토니 다니엘이 옳았어요. 전 더 이상 장애인이 아녜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꿈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으니까요.”
오늘날, 릴리는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혀는 책 두 권의 저자이다.
릴리는 우리 사무실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반쯤 잘려져 나간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켜쥐고서, 남아 있는 손가락과 뭉툭한 엄지손가락 마디를 사용해 능란한 솜씨로 우리를 가르친다.
쉿! 귀를 기울여 보라! 당신은 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라! 내 말을 잊지 말라. 천사들은 결코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메시지를 건넨 뒤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하고 말할 뿐이다.
3. 주제가 있는 글
그 놈의 사춘기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강금주/십대들의 쪽지 대표
품 안의 자식이라고, 언제부턴가 사사건건 짜증을 내고 까칠하게 굴더니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를 보면 허탈하고 울화통이 치민다. 그래도 섣불리 건드렸다가 행여 엇나갈까 그 놈이 사춘기만 지나면 나아지려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대한민국 십대 청소년과 30여 년 함께 하면서 누구보다 그들의 필요를 헤아려온 ‘십대들의 쪽지’ 강금주 대표는 ‘사춘기 자녀교육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춘기 자녀교육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무엇이며, 이 시기에 놓쳐서는 안 될 아버지의 과제는 무엇일까?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한 아이들
F군은 진로문제를 놓고 부모님과 갈등을 빚다 우울증이 생겼다. 그는 공부보다는 연기하는 쪽이 더 적성에 맞아 3학년이 되면 연기 학원을 다니며 연극영화과 진학을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시며 일반 입시학원에 등록시켰다. F군은 부모님이 자기 의견을 무시하고 부모님 뜻대로 하자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픈 의지가 사라졌다고 한다. 청소년기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 역시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G군은 친구들에게 못생겼다고 놀림을 많이 받는다. “반 애들이 오크(온라인게임 ‘리니지’에 등장하는 괴물)라고 놀리고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막 웃으며 쑥덕거려요. 왜 이렇게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싫어요.” G군은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보면 비웃는 거 같아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싫다고 했다.
B양은 “오빠는 전교 10등 안에 들어요. 그런데 전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오빠만 예뻐하시고 저에게는 넌 누굴 닮아 그러니, 오빠 하는 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세요. 그냥 이대로 사랑받고 싶은데, 왜 오빠만큼 해야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건지 정말 슬퍼요.”라며 오빠와 자신을 비교하는 부모님이 싫다고 했다. 부모님의 질책을 들으면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아프지만 부모님은 B양에게 ‘공부하기 싫으니까 꾀병 부린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고 한다.
청소년 우울증은 첫째, ‘과민함’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 있는 십대는 보통 생기가 없고, 가라앉아 있지만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고, 짜증내고, 불만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과할 정도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가족이 함께 하는 활동을 기피한다. 남학생의 경우 공격적이거나 무모한 행동을 함으로써 학교는 물론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둘째, 우울증이 있는 십대들이 반드시 말이 없고, 외톨이인 것만은 아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학교 성적이 뛰어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을 수 있다. 우울증이 있는 십대들의 공통점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친구로 둘러싸여 있어도 항상 외롭다고 느낀다. 셋째, 청소년 우울증은 두통이나 복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의사의 진료 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자녀가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면 우울증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아이가 감정의 탯줄을 끊으려 할 때 (박탈감을 느끼기보다 깊은 신뢰감을 쌓는 기회로)
마치 엄마가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자르는 것처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부모와 연결된 감정의 탯줄을 스스로 끊으려한다. 감정의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생겼다는 뜻이다. 금지옥엽으로 기른 아이가 “내 생각은 달라!” “왜 안 돼?”하면서 자기 독립을 주장하면, 무한정 아이와 유대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를 통해 이전에 느끼던 만족감을 채울 수 없게 되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려 해서 문제가 된다. 이런 때 부모는 “비로소 아이가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했구나.” 인정하고, 자녀와 심도 있는 관계로 나아갈 시점이 없다고 각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내면의 집을 짓는 아이에게 (자녀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믿고, 열어주는가?)
어느 날 문득문득 ‘나는 누구일까?’ 고민하는 아이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부모의 말‘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들려주는 언어로 자기 내면의 집을 짓는다. 그런데 대개 부모가 아이의 개성이나 강점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안 드는 점만 콕콕 짚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특히 직장에서 효용과 효율을 따지는 게 습관이 된 아버지는 자녀에게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아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아이를 재단하며 ’이도저도 못하니 너는 공부나 해!‘한다면 아이는 어떤 것에도 행복과 성취감을 맛볼 수 없다. 자녀교육의 결과가 경제효용의 법칙대로 나오는 것이 아닌데,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아이는 자신에게 열린 가능성을 볼 수 없다. 적어도 자녀에게 “잘 되라”고 하면서, 실상 아이의 ’성적‘을 두고 자기 불만을 쏟아 붓는 건 아닌지 정직하게 살펴보자.
제발, 나를 붙잡아주세요! (모든 십대는 이야기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해)
그렇다고 사춘기 아이들이 언제나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 불리할 때만 주장을 하다가 도움이 필요해지면 부모에게 달려온다. 사춘기는 다 자랐다고 손을 뗄 시기가 아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불안한 자신을 ‘누군가 붙잡아주길’ 갈망한다. 그 누군가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달라질 수 있다. 그에게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신뢰가 형성되면 그 다음엔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십대다.
무서울 게 하나 없는 십대에게 (부모는 권위에 순종하는 법부터 배워야)
부모는 부모다워야지, 친구 같아서는 안 된다. 자녀가 권위에 반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단, 권위를 가용하지 말고 ‘설득력 있는 대화’를 통해 가르쳐야 한다. 당장 안 듣는 것 같아도 선택의 순간에 아이들은 엄격한 부모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가만히 놔둬서 잘 자라는 건 ‘잡초’뿐이다. 꽃이나 나무나 잘 자라려면 때에 따라 다듬어주어야 한다. 어떤 아빠는 “십대 때 방황은 누구나 한다. 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봐라! 지금은 사회생활 잘하고 있다.”면서 자신을 매우 관대한 아빠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요즘 십대가 놓인 환경이 아빠의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치명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무서울 게 하나 없는 무법자로 키우면 안 된다. 가정마다 넘어서는 안 되는 규칙과 기준을 세워서 아이들이 선을 넘으면 처벌을 받고, 규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
아이를 너무 빡빡하게 잡는 게 아닌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금지할 것인지 경계를 세울 때 뭉뚱그리지 않는다. 경계가 모호하면 쓸데없이 다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빨리 들어와라.”하면서 속으로는 ‘늦어도 9시까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보면 새벽 4시까지 노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새벽 2시쯤’ 귀가하겠다고 맘먹었다. 아이가 더 놀고 싶어도 꾹 참고 새벽에 들어왔는데, 부모는 좋아하기는커녕 비난과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바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한다. 이처럼 서로의 기준과 원칙이 다르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집집마다 그 가정만의 매뉴얼을 따라 부모든 자녀든 정확하게 지키면 문제가 없다.
자신을 돌볼 줄 하는 아이로 키우기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가르쳐야)
사춘기는 무엇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귀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아이가 남도 소중한 줄 알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란 자기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단단해지며, 이는 타인과의 관계 가운데 훈련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도덕, 가치, 예절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요즘 십대들이 “그냥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데, 행동 기준이 자기 기분과 감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상담하기 가장 어려운 아이를 꼽으라면 ‘도덕과 가치관이 아예 없는 아이’다. 충동적으로 친구를 때리고, 거짓말하고, 물건을 훔쳐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수학 공식 가르치듯 계속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자녀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부모는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충동을 자제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조언을 잔소리로 듣는 아이에게 (아이의 상태를 보고 이야기해야)
아버지의 충고를 아이가 기분 나빠하면 잔소리고, 기분 좋게 들으면 조언이다. 아이의 상태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이야기도 자주 해봐야 어떤 때 아이가 잘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대개 아이들이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몹시 싫어한다.
그리고 아이가 좋은 말을 기분 나쁘게 듣는 것 같으면 화부터 내지 말고, 구체적으로 “난 좋은 의도로 이야기했는데, 아빠 말투가 기분이 안 좋은 거니?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니?”하고 물어라.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미리 방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이들 마음을 정확하게 짚어주면 ‘환기’가 된다. 거기에 “계속 얘기하고 싶은데 어쩌지.”하면서 넉살 좋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좋다. 다만 이야기하는 그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 못하면 인생 어느 시기에도 회복할 길이 없다.
아빠와 함께 있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함께 보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함께 보낸다. 집에서 실컷 뒹굴어도 좋고,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친구랑 있는 게 좋다고 내빼도, 부모와 시간을 함께 하도록 끌어들이고 그 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아빠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도 가끔 데려갈 수 있다. 호주나 미국에서는 만 15세까지 자녀 혼자 두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도 누군가는 꼭 지켜보아야 한다. 같이 걷고, 같이 책을 읽고, 같이 수영하고, 같이 쇼핑하고, 같이 노래하라. 우리나라는 식구가 일주일에 한 끼니라도 같이 먹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모두 따로 밥을 먹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곳에 있으니 사춘기 자녀의 현실이 메마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원하는 걸 뭐든지 들어줄 수 없을 때 (형편에 맡게 아껴 쓰고, 당당하게 살기)
사춘기가 되면 자녀가 집안 경제 상황에 민감한데, 자기가 원하는 걸 부모가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어떤 부모는 무작정 참으라고 한다. 경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 주여야 한다. ‘네가 이걸 가지려면 언제 어떻게 돈을 모아서 언제쯤 사줄 수 있겠다.’하고 당장 사주지 못하지만 따로 돈을 모아보자고 제안한다. 유행이 지나서 문제라면 그때 갖고 싶은 걸 말하라고 설득한다. 당장 돈이 없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걸 가르쳐준다. 하지만, 부모로서 “너를 위해 돈을 모아보마.”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뿐더러 부모의 진심을 깨닫는다.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1보이면서, 형편에 맞게 서로 돕고 아껴 쓰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공유하는 것이다. 과하게 주거나 지나치게 절제하는 것 모두 좋은 방법은 아니다.
부모를 오해하는 아이에게 (숨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사춘기를 활기차게 보내야)
내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자주 “내 뼈를 갈아서라도 너 하나 공부시킨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 하지만 그 말씀이 스트레스가 안 된 건, 가난 때문에 공부하고 싶어도 못했던 한이 아버지에게 사무쳐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실수하고 실패한 이야기라도 솔직하게 들려주면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 부모가 그걸 이용해서 아이를 조정하려 들면 안 된다. 부모 말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말 하나로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줄어든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면서 여러 경험과 생각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사춘기는 인간 대 인간으로 아빠와 자녀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흥미로운 시기다.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4. 건강 코너
성인 기준 하루 12~13g의 소금 필요
‘소금 같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통한다. 그만큼 소금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성분이다. 우선 소금은 체내 삼투압 유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돼 있다. 소금의 나트륨은 체내에서 탄산과 결합 후 중탄산염이 되어 혈액이나 그 밖의 체액의 알칼리성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인산과 결합한 것은 완충물질로써 체액의 산•알칼리 평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나트륨은 쓸개즙•이자액•장액 등 알칼리성 소화액의 성분이 된다. 따라서 소금 섭취량이 부족하면 이들 소화액 분비가 감소하여 식욕이 떨어지게 된다. 또 나트륨은 식물성 식품 속에 많은 칼륨과 체내에서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 칼륨이 많고 나트륨이 적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염소는 위액의 염산을 만들어주는 재료로 중요하다.
염분이 장기적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전신 무력•권태•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난다. 특히 땀을 다량으로 흘려 급격히 소금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현기증•의식혼탁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뚜렷한 기능상실이 일어난다. 이렇듯 몸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금은 얼마나 먹어야 할까? 소금의 필요량은 노동의 종류나 기후 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성인의 경우 하루 12~13g이다. 하지만 과잉 섭취하면 고혈압, 신장병, 부종, 골다공증 등의 원인이 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생활 구석구석에서 실력 발휘하는 소금
소금은 일상생활에서도 식품 저장, 소독, 청소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천으로 된 책상용 의자나 거실용 카펫, 자동차 매트는 먼지가 올 사이사이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데, 여기서 굵은 소금을 술술 뿌려두었다가 진공청소기를 돌리면 말끔해진다.
빨래 할 때에도 소금은 실력을 발휘한다. 물 1리터에 소금을 한 스푼 정도 넣으면 거품이 덜 나고 옷에 세제가 남지 않는다. 옷을 자주 세탁하면 염료가 빠져 색이 바래는데, 이때 20%농도의 소금물에 옷을 20분 정도 담갔다가 빨면 염료가 물에 녹는 것을 방지해 옷의 색깔을 선명하게 유지할 수 있다. 또 잘 빠지지 않는 기름때도 소금으로 제거할 수 있다. 또 추운 겨울 빨래 헹굼 물에 소금을 넣어 헹구면 밖에 널어도 얼지 않는다. 냄새가 심한 신발은 소금을 뿌려두었다가 털어서 말리면 냄새가 제거된다.
바닥에 기름을 흘렸을 때에도 소금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어내면 쉽게 기름을 제거할 수 있다. 흘린 기름 양이 많을 때에는 2~3회 반복하고 물걸레로 닦으면 된다. 달걀을 떨어뜨렸을 때에도 소금을 넉넉하게 뿌려두었다가 5분 뒤 빗자루로 쓸면 비린내와 끈적거림까지 없앨 수 있다. 기름 냄새가 밴 손도 소금을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냄새를 없앨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식재료를 손질하는 도마는 쉽게 지저분해지고 칼자국이나 얼룩이 남는다. 이때 굵은 소금으로 도마를 박박 문질러 닦은 뒤 햇볕에 소독을 하면 냄새제거와 얼룩제거, 살균까지 한방에 해결된다.
이밖에도 달걀을 삶을 때 소금을 조금 넣으면 달걀이 터지지 않고, 옥수수를 삶을 때 설탕과 함께 소금을 조금 넣으면 단맛이 강해진다. 가지를 볶기 전에 진한 소금물에 담그면 가지가 기름을 많이 먹지 않고, 보리차에 소금을 넣으면 향기가 좋아진다. 집안에 개미가 많다면 개미가 모이는 위치에 소금을 살짝 뿌리는 것만으로도 개미를 없앨 수 있다.
다양한 소금 활용 방법
• 감물이 옷에 묻었을 때 소금물에 담갔다 빨고 식초 탄 물에 다시 빨면 감물이 빠진다.
• 토마토나 삶은 감자 등은 소금에 찍어 먹으면 달고 맛이 좋다.
• 기름 묻은 프라이팬은 뜨거울 때 소금을 뿌려 휴지로 닦아내면 깨끗이 닦을 수 있다.
• 생선을 구울 때 소금물에 30분 정도 담가 두었다 구우면 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 시금치 등 야채를 삶을 때 소금을 조금 넣으면 야채의 색깔이 선명해진다.
• 버섯요리를 할 때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치면 색깔이 살아나고 독성이 없어진다.
• 아기를 목욕시킬 때 목욕물에 소금을 넣으면 피부가 매끈해지고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
• 클렌징크림으로 화장이 잘 지워지지 않을 때 클렌징크림에 분말소금을 조금 넣으면 화장이 깨끗이 지워진다.
5. 어른들을 위한 동화
세 나무 이야기
씨앗
자그마한 씨앗들이 산 여기저기를 굴러다녔습니다. 바람이 휘익 하고 밀칠 때면 어떤 씨앗들은 하늘로 부웅 날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씨앗들은 아직 너무 작고 어려서 자신들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듯했지만 그래도 어딘지 설레고 신나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더욱 가볍게 날던 씨앗 세 개는 거의 산마루가지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위로는 푹신푹신한 흰 구름들로 장식된 푸른 하늘이 가까웠고 옆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 맑은 냇물이 흘렀습니다. 아래쪽에는 알록달록한 색을 한 집들이 빼곡이 있는 마을도 보였습니다.
‘우와… 멋지다!’
세 개의 씨앗들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빨리 싹을 틔우기를 기대했습니다. 씨앗들은 비와 햇빛을 맞으며, 계절과 계절을 지나며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무
아기 씨앗들은 작은 잎사귀로 바람과 장난을 칠 만큼 자랐습니다. 이제는 뿌리도 제법 깊어져 거센 비가와도 흘러내릴까 봐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들이 유난히 가깝게 다가 와 반짝이는 어느 밤이었습니다. 나무들은 행복한 얼굴로 자신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나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저번에 여기에 올라왔던 부인의 목걸이를 기억하니? 푸르게 반짝이던 보석 목걸이 말이야. 그래. 꼭 저 별들 같았어. 보석같이 반짝이는 저 별들 좀 봐! 나는 아름답고 귀한 보석들을 가득 담는 보석함이 될 거야!”
둘째 나무는 맑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고는 말했습니다.
“냇물의 물줄기 좀 봐. 어딜 저렇게 날마다 함차게 흘러가는 걸까? 넓고 깊은 바다로 가는 거겠지? 그래, 나는 세상에서 가정 크고 튼튼한 배가 될 거야! 귀한 왕을 모시고 바다를 힘차게 향해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습이 뛰어!”
셋째 나무는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았습니다. 활기 넘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뛰었습니다.
“음… 나는 하늘이 가까운 이 산마루가 좋아. 그저 여기서 더 높이 자라나고 싶어. 내가 여기서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크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겠지? 그래, 나는 =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상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될래!”
각자의 꿈을 가득 안은 세 그루의 어린 나무는 더욱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큰 나무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얀 눈이 산마루에 쌓였다 녹았다 반복하기를 여러 해… 어느 덧 세 그루의 어린 나무들은 수백 개의 싱그러운 잎을 햇빛에 반짝이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느 덧 세 그루의 어린 나무들은 수백 개의 싱그러운 잎을 햇빛에 반짝이는 큰 마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나무꾼이 세 나무가 있는 산마루에 올라왔습니다. 나무꾼은 첫재 나무 앞에 멈춰 서더니 말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나무로군. 그걸로 만들면 아주 딱이겠어!”
첫째 나무는 아름다운 보석들이 가득한 보석함이 될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도끼가 나무 밑동을 쿵, 쿵 찍을 때의 아픔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니었습니다. 나무꾼은 이제 둘째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튼튼하네, 내가 생각한 대로야.”
둘째 나무는 웅장한 배가 될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자신의 밑동을 빨리 베어내라고 나뭇잎들을 바스락거리며 재촉할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무꾼은 셋째 나무를 스윽 만져보았습니다. 산마루에 남고 싶었던 셋째 나무는 불안해지는 감정에 몸을 떨었지만 나무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 나무는 아무 데나 쓸 수 있겠어. 일단 가져가야지!” 그리고는 셋째 나무를 거침없이 베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간 세 나무들은 그동안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빛나는 보석함이 되고 싶었던 첫째 나무는 냄새나는 여물을 담는 구유가 되었습니다. 웅장한 배가 되고 싶었던 둘째 나무는 자그마한 고깃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나무는 길고 두툼한 기둥으로 만들어져 나무꾼의 집 뒤뜰에 다른 목재들과 함께 쌓였습니다.
“이게 뭐야… 나는 산마루에 남아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싶었는데…”
또 다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세 나무들은 어릴 적 꿈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열매
마구간의 구유가 된 첫째 나무는 보석함이 되고 싶었던 꿈도 산마루에서 별을 바라보던 추억도 다 잊은 채 살았습니다. 이제는 꿈과 추억보다 냄새나는 말들이 더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젊은 여인이 그 구유에 아기를 눕혔습니다. 찬란한 별빛이 구유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제야 첫째 나무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고 있구나!’
수년 후 작은 고깃배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 있을 때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불기 시작 했습니다. 시커먼 파도가 고깃배로 몰아쳐 배 안은 온통 물로 가득했습니다. 배 안의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 홀로 평안해 보이는 한 남자가 바람과 파도를 향해 말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놀랍게도 바람과 파도가 그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둘째 나무는 깨달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왕이 이 배에 타고 계시는구나!’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의 어느 날, 병사들이 잊힌 셋째 나무를 목재 더미 속에서 힘겹게 꺼냈습니다. 얼마 후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한 남자가 어깨에 셋째 나무를 지고는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곧 병사들이 나타나 그 남자를 나무에 묶더니 쾅, 쾅 못으로 박았습니다. 십자가가 된 셋째 나무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세상은 온통 새롭게 변해 있었습니다. 셋째 나무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매달리셨던 거야!‘
하나님은 세 나무의 꿈을 자신의 목적대로 자신의 왕국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구유는 이 세상 가장 귀한 보물인 아기 예수님을 품었으며 작은 고깃배는 왕 중의 왕을 모시게 되었으며 굵고 커다란 십자가는 예수님의 구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보석함이 되는 것보다, 비싸고 화려한 요트가 되는 것보다, 언덕에 서서 자기의 큰 키나 자랑하는 나무가 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삶이었습니다.
6.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둘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릴리 월터즈(앞의 글을 쓴 이의 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들이다. -마더 테레사-
나의 기쁨과 열정은 내 목소리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은 특별히 고된 작품을 연습하던 중에 목이 몹시 쑤셔 왔다. 나로선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성대가 고장났을까봐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주연 배우였고, 게다가 막 오를 날짜가 임박해 있었다.
나는 우리집 가정 주치의와 진료 약속을 하고 가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화가 치밀어올라 직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인근 지역에 목 전문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재차 진료 예약을 하고 서둘러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사가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나의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몹시 기분이 우울했다. 나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인데, 하필이면 체력이 꼭 필요한 시점에서 병이 난 것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일할 시간에 두 명이나 되는 의사를 만나러 다니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잠시 후 간호사가 다시 와서 말했다.
“저, 개인적인 질문을 한 가지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병원인데 개인적인 질문밖에 다른 어떤 걸 물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간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무슨 질문인데요?”
간호사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당신의 손을 봤거든요.”
나는 열 한살 때 지게차가 전복하는 사고 때문에 왼손 절반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연극 배우가 되겠다는 내 꿈이 사라졌었다. 물론 모두가 “그래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요. 당신이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하고 말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성한 사람만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 같은 사람이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나는 키가 너무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으며 재능도 별로 없었다. 맞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 할 리가 없어. 하지만 난 뮤지컬 코미디가 좋았고, 또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한 극장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내가 첫 번째로 뽑힌 것이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시도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 캐스팅되었다.
간호사는 조금 더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양향을 주었는가 하는 거예요.”
지난 25년 동안 아무도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없었다. 흔히들 “신경 쓰이겠군요.”라든가 “좀 불편하겠어요?”라고 말할 뿐이지 “당신의 삶에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하고 대놓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있고 나서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제가 출산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의 손 하나가 당신의 손처럼 생겼어요. 그래서······.”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냐구요?”
나는 적당한 대답을 찾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난 말했다.
“물론 이것은 내 삶에 많은 양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나쁜 식으로는 아녜요. 난 정상적인 두 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많은 일을 하죠. 1분에 75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고, 기타 연주를 하며, 수년간 승마를 해 왔어요. 또 승마 교관 자격증까지 갖고 있죠. 난 현재 뮤지컬 무대에서 일을 하고 있고, 전문적인 강사이며, 계속해서 대중들 앞에 서죠. 그리고 일 년에 4,5회 정도 텔레비전 프로에 나갑니다. 난 한 번도 불구인 손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가족들의 사랑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가족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두 손을 갖고도 하기 힘든 일을 내가 한 손으로 해내는 걸 보고는 나보다 더 기뻐했어요. 가족 모두가 함께 흥분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죠.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어요.
당신의 딸은 아무 문제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 아인 정상이에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당신이 그 아이에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칠 거예요. 그 아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겠죠. 하지만 당신은 그 아이에게 ‘다른 것’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야만 해요. 정상적이라는 건 평균을 의미하잖아요. 평균은 너무 시시하지 않겠어요?“
간호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간단히 “고마워요.”하고 말하고는 걸어나갔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생각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모든 일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 지게차가 내 왼손 위로 떨어진 것조차 그렇다. 모든 상황은 나로 하여금 이 병원에 오게 했고, 지금 이 순간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확히 그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내 목 안을 들여다보더니 목에 마취를 해서 조직 검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가수든 성악가든 자신의 목에 의료 기구를 집어넣는 것을 질색한다. 특히 마취를 해야 할 정도라면!
난 말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는 얼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음 날 내 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나아 있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7. 생명의 말씀
마음을 여는 대화 (욥33:1-12)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리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여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5.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그대는 실로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으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물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사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욥이여(1-4절)
욥은 위로하러 온 줄 알았던 세 친구들로부터 지금껏 정죄하는 말을 듣고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점점 그들의 말을 끊고 거부했습니다. 듣지 않으니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 일방적인 말만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엘리후는 친밀하게 욥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갑니다. 말로 상처받고 닫힌 마음은 진정성 있는 말로 위로할 때 열릴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인생을 덮고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알고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이처럼 닫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숨결을 상한 심령에 스며들게 합니다.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5-7절)
욥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그와 자유롭게 대화하며 그의 조언을 듣고,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듣기를 원했습니다(욥 16:21). 엘리후는 연륜이 많은 욥에게 그보다 연소한 자신이 말할 자격이 없음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엘리후는 오히려 자신이 중재자하고 하면서 욥을 향해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흙으로 지으셨지만 영적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누구에게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구원을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8-12절)
말 한마디에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에는 늘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기에 조심해야 하며, 섣불리 말로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세 친구들은 욥이 극심한 고난 속에 인내하지 못하고 말한 것으로 쉽게 그를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의 핵심을 잘 파악했고, 욥이 자신의 무죄와 의로움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을 낮추고 마치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처럼 말한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십니다. 엘리후는 고난 뒤에 올 축복을 미리 바라보고 욥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힘썼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 할 수 없습니다(롬 8:18). 엘리후처럼 고난이 축복임을 깨달은 사람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살립니다.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점자새빛(겨울호)에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4동 858-39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137-838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지참 서류: 자기소개서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 이용안내 =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장애인문화예술활동 지원)
2012년 개관한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장애인의 예술적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자신감 회복을 도우며, 잔존능력 개발 및 직업능력 향상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써 통합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예술교육을 받기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